인생의 향기
1944년 일곱 살이 될 무렵, 나는 내과 전문의로 병원을 개업한 프랭크 삼촌의 진료실에서 재생생리학에 관한 책 한 권을 보게 되었다. 그 책은 삼촌의 진료실에 있던 일반적인 의학서적 이었다. 여섯 살인 내가 읽기에는 너무 어려웠지만 책에 있는 그림들이 무엇을 의 의미하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어서 어린 나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했다. 나는 책에 있는 그림을 찢어서 학교에 가져가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당시 우리는 초등학교 일학년이었다.
이 일로 인해 엄마는 교장선생님의 호출을 받게 되었다. 나는 엄마가 학교에 도착하실 때까지 교장선생님 집무실 밖에 있는 의자에서 기다려야 했다. 전에는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무슨 일인지는 잘 몰랐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간에 가정간호사인 엄마는 당연히 환자를 돌보아야 하는데, 일하다 말고 학교에 급히 와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엄마가 도착하신 후에야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에게 몹시 화가 나 있던 교장선생님은 엄마와 나를 당신의 집무실 의자에 앉게 한 후 내가 한 일을 엄마에게 말씀하셨다. 교장 선생님은 내가 그림을 보여 준 학생들에게 사과를 하고 엄마는 그들의 부모들에게 사과 편지를 써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게 잘못에 상응한 처벌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교장 선생님의 말투가 워낙 격앙되어 있어서 나는 무서웠다. 그러나 엄마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설명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교장선생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친구들에게 그림을 보여 주면서 어떤 말을 했는지 그대로 엄마에게 이야기하라고 하셨다. 엄마는 내가 성관계를 묘사한 그림을 보여 주면서 친구들에게 했던 말을 들으시더니, 아주 침착한 목소리로 교장선생님을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저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씀이세요? 모두 사실을 묘사한 그림이 아닌가요? 이 그림이 잘못되었나요?”
다만 엄마는 내가 책에서 그림을 찢은 것에 대해서는 삼촌에게 사과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은 삼촌은 크게 껄껄 웃었다.
이 일에 대해 가족들은 전혀 염려를 하지 않았지만 나는 왠지 좀 부끄러웠다.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라면 교장선생님은 왜 그렇게 화를 내셨을까? 그리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가족 모두가 이 일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는 외할아버지까지도 알고 계신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 일이 있고 몇 주가 지나서 나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안식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일을 하지 않도록 명하신 날이다. 사람들은 그날만큼은 모든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했다. 외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매일 의식주를 해결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서 부지런히 일을 하지. 그래서 사람들은 일 때문에 지치기 마련이란다. 네쉬메레야, 그래서 하느님은 상으로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셨고, 안식일에는 모두가 쉬어야 한단다.”
이 말은 당시의 우리 집의 상황과는 달랐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알고 싶었다.
“외할아버지, 정확하게 안식일이 언제예요?”
외할아버지는 안식일은 금요일 해가 지는 때 시작하여 토요일 해가 진 다음에 끝난다고 설명해 주셨다. 잠시 후에 다시 여쭈었다.
“그러면 잠자는 시간에 들려주는 이야기로 안식일이 끝나는 거예요?”
외할아버지는 웃으시더니 말씀하셨다.
“네쉬메레야, 안식일은 축복의 기도로 끝을 맺지. 그때 사람들은 세 개의 초를 꼬아서 하나로 만든 특별한 초에 불을 켠단다.”
외할아버지는 특별한 초가 마치 이렇게 생겼다고 하시며 땋은 내 머리카락을 들어 보이셨다. 나는 아직까지 그런 초를 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매일 아침 엄마가 내 머리카락을 땋아 주는 그런 모양의 초를 사람들은 왜 만드는지 궁금했다.
“외할아버지, 사람들은 왜 그런 모양의 초를 켜지요?”
“글쎄다. 언제부터인지 아무도 모르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그렇게 해 왔단다. 내 생각에 세 개의 초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몸을 나타내고, 촛불을 켜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닐까?”
나는 잠시 동안 외할아버지의 말씀을 생각하다가 물었다.
“외할아버지, 사람들은 안식일이 끝나면 다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슬퍼하나요?”
외할아버지는 웃으시더니 항상 서재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나무상자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그 상자는 높이가 한 30cm 가량 되는 성곽의 모습을 한 작은 상자인데, 그 성에는 작은 창문과 탑들과 펄럭이는 깃발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 상자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아주 아름다운 상자였다. 상자를 외할아버지에게 전해 드리면서 나는 약간 달콤한 향기를 느꼈다.
그 상자를 바라보는 외할아버지의 얼굴은 고요해지면서 잠시 그의 영혼은 먼 곳으로 떠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앉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기다렸다. 외할아버지는 잠시 동안 나를 바라본 후 말씀하셨다.
“이 작은 상자에는 향이 들어있단다.”
외할아버지가 나무상자 뚜껑을 열자, 계피가루 냄새와 같은 달콤한 향기가 퍼졌다.
“안식일이 끝나면 이 같이 향이 든 상자를 한 사람씩 건네주면서 하느님이 지으신 땅의 향기를 맡는단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물었다.
“왜 그렇게 하는데요?”
< 외할아버지는 빛나는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 “안식일이 끝나도 사람들이 슬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지. 안식일이 아름답고 거룩한 것처럼 세상에 있는 모든 일들도 아름답고 거룩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란다.”
“이 세상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도 인생을 즐기기를 하느님은 원하신단다. 춤추고 먹고 마시고 보고 듣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체험하는 모든 것 안에 즐거움이 있지. 그리고 인간은 몸으로 서로를 느끼는 특별한 즐거움도 있단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러움으로 외할아버지를 바라보았지만 그분은 그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친구들을 안을 때 네 마음이 어땠지? 친구의 마음이 느껴지면서 달콤하지 않았니? 그보다 훨씬 더 달콤한 것이 있단다. 어른들은 특별한 방법으로 서로를 안으면 그들의 영혼은 하나가 된단다.”
외할아버지는 마치 먼 곳의 무엇을 바라보듯이 내 머리 위를 잠시 바라보고는 다정히 말씀하셨다.
“네쉬메레야, 그 즐거움은 하느님이 주신 정말 좋은 축복이란다.”
외할아버지는 나의 일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외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있던 나는 어둡고 무거웠던 부끄러움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프랭크 삼촌의 책에 있던 그림을 찢어 친구들에게 보여 주었던 일을 외할아버지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도 알고 계셨다. 그러나 그 그림의 의미가 하느님이 주신 축복이라면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리라.
그로부터 대략 일 년 후에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 상자가 없어진 것을 알았지만 장례식을 치르고 하느라 그 상자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잊었고 그 이후에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 상자의 행방은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엄마가 연로해 진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엄마는 어느 날 당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당신의 어머니 즉 나의 외할머니 레이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평생 동안 진정으로 사랑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그런데 외할아버지는 왜 외할머니에 대해서 한 번도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요?”
< “그래, 말씀하시지 않으셨지. 당신의 마음속에 내밀하게 간직하고 싶으셨거든.”
외할아버지 부부는 정통 유대교 법에 따라 결혼 생활을 하셨다. 한 달 중의 2주간은 부부가 같은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잤고, 아내의 생리주기가 시작되면 2주 동안은 따로 작은 독방에서 별거의 기간을 지냈다. 그 기간이 끝나면 아내는 다른 여인들과 함께 밀크바라고 불리는 공동으로 하는 목욕 의식에 참여하여 기도하고 몸을 정결하게 했다. 그런 다음에야 다시 남편의 품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런데 목욕 의식을 치르고 다시 정상적인 부부 생활로 돌아와도 그 사실을 알리는데 문제가 있었다. 정통 유대교 법에 따르면 남편은 비록 부인이라고 하더라도 여성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고 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금기였다. 이 말씀을 하면서 엄마는 내 눈을 바라보셨다.
“그래서 당시의 여인들은 저마다 다시 남편과 한 몸이 되기를 바란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고유한 비법을 지니고 있었지.”
목욕 의식에서 돌아온 외할머니 레이첼은 저녁에 돌아와서 탈무드나 유대교 경전을 연구하고 있던 남편의 서재로 가서는 향이 든 상자를 남편 눈에 쉽게 띄는 곳에 놓아두곤 했다.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표시였다. 엄마는 웃으면서 나직하게 말씀하셨다.
“외할아버지가 저녁에 연구를 마치고 침실에 가실 때는 그 향이 든 상자를 가지고 올라가셨지. 그러면 우리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 알았단다.”
나는 진한 감동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 그 향이 든 상자가 작은 성곽처럼 생겼지요?”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어렸을 때 늘 할아버지 서재에 있던 것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엄마는 여인들 끼리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짓는 그런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그것은 네 외할아버지와 함께 있단다.”
그때 일을 회상하며 애틋한 표정이 되셨다.
“외할아버지가 함께 묻어주길 원하셨지.”
외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오래 전에, 아직 외할아버지가 젊으실 때 돌아가셨다. 안타깝게도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에게 25년 동안이나 작은 상자만을 남겨 두셨다. 이제 외할아버지는 이 세상에서의 공부를 다 마치셨고 이층에 있는 침실로 가셨다. 오랜 별거의 기간은 끝났고 다시 외할머니의 품에서 잠드시고 계시리라.
티벳명상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