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1 독서(사도 2,1-11)는 성령강림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루살렘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
즉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루카 24,49)는 말씀을 잘 지켰습니다.
그런데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는 안식일부터 일곱 주간이 지난 뒤에
밀 수확을 위해 정해놓은 축제인
오순절(주간절)이 되었을 때(레위 23,15-16; 민수 28,26; 신명 16,9)
제자들은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사도 2,2)를 듣게 됩니다.
여기에서
루카복음사가는 하느님께서 나타나심을 뜻하는 용어(탈출 19,16)를 사용하면서
밀 이삭이 여물어가는 들판이 바람에 의해
바다의 파도가 출렁이는 것과 같은 장관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때에 제자들은 불의 모양을 보게 됩니다.
바람과 더불어 하느님의 나타나심이 이제는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보이는 불(루카 3,16; 시편 104,4; 탈출 3,2; 14,20.24; 1열왕 19,11-12)로 표현됩니다.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듣고 본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이제껏 듣지 못했던 표현들을 과감하게 끌어들이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마치 성령강림의 현장에 있지 않았던 바오로 사도가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갈라 3,2; 로마 8,4-11; 1코린 12,3-5; 에페 1,13)
말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제자들과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뜨거운 불이 끓어오름으로 성령의 현존을 체험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두 하나가 되었다는 의식이 갖게 되었으며,
온 세상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널리 퍼뜨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투철했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유다인들에게는 물론이요
여러 부족들에게
예수님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는 일이 놀랍게만 여겨졌습니다.
원래 오순절이란
시나이 광야에서의 계약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계약의 정신(예레 31,31)을 되새기던 유다인들의 축제였습니다.
루카복음사가는 시나이에서 맺은 계약에 대하여 직접적인 언급이 없지만
그 정신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하게 예루살렘에 있던 유다인들에게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서 모여든 모든 유다인들에게도 성령께서 내려오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고(사도 2,4),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들으면서 어리둥절했었다는 것(사도 2,6)이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계속해서 여러 가지 언어로 표현되고,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들으면서
같은 믿음을 고백하고 있음도 역시 성령에 의한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초기교회의 구성원들이 여러 나라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으며,
아버지께서 약속해주신 성령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명을 예루살렘에서부터 힘차게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였던 많은 지방의 유다인들이
성령을 받은 뒤 제 각기 자기 언어로
그리스도께 대한 증언을 알아들었다는 것은
신앙은 언어를 초월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특히
오늘 제1 독서에서 언급되는 나라들은 모두 15개 지방인데
그 순서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펼쳐지는 순서대로 나타납니다.
서서히 유럽으로 뻗어나가는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수확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유다인들의 오순절 축제를
교회의 시작으로 삼았던 것은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따른 결과이며,
“성령의 새 포도주인 사랑”(아우구스티노, Sermon, 227B,1)을
새 부대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초기교회가 빨리 성장할 수 있었고,
온 세상으로 말씀이 선포되었던 원인은 사도들 스스로 일구어낸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성령의 힘에 의한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령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게 해주시는 힘이요,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원동력임을 절실하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2 독서(1코린 12,3ㄴ-7.12-13)에서 바오로 사도는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 자신을 생각해보십시오.
성당에 나온 첫날부터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할 수 없었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부터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는 “성령은 같은 성령”,
“주님은 같은 주님”,
그리고
“같은 하느님”이라고 하면서
아주 일찍부터 하느님을 삼위일체로 표현하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여러 가지 은사가 있지만 같은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며,
이 은사는 자랑하거나 과시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교회와 공동선을 위해 봉사하라고 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일치할 수 있도록
각자에게 여러 가지 은사를 따로따로 나누어주신다고 하면서
열광주의적인 태도와 독단적인 행동을 견제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요한 20,19-23)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아침에
당신을 버리고 달아났던 제자들(마르 14,50)이 모여 있는 곳에 찾아오셔서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은 당신의 평화(요한 14,27)를 주시는 것이며,
승리한 메시아,
즉 “평화의 군왕”(이사 9,5; 미카 5,4)이
하느님 나라의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실현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을 배반했던 제자들에게 다시 찾아오심이야말로
예수님의 대단한 자비하심을 드러내신 것이듯이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에게
두 손과 피와 물이 나왔던 옆구리(요한 19,34)를 보여주신 것은
죽으셨던 분이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성령을 불어넣어주신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이 누구신가를 다시 확인해주시는 것이며(요한 1,32-33),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도록 성령을 불어넣으시는 것이고(요한 3,3-8),
동시에
인간은 오직 하느님의 숨(성령)에 달려있는 존재임을
확인해주시는 것입니다(에제 37,1-10 참조).
성령강림 대축일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성령께로부터 받는다는 것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성령강림 대축일은
성령께서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심을 고백하면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특히
성령강림 대축일은 우리 인간이 주님의 숨결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이며,
모두 한 성령 안에서 형제임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이렇게 세례를 받은 모든 이들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이시며,
이웃사랑에 매진할 수 있도록 재촉하시는 분이심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제자들과
이방인들이
수확기를 앞둔 오순절에 성령을 체험했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줍니다.
수확을 앞둔 거대한 밀밭은 파도에 의해 출렁거리는 파도 같이 보입니다.
밀 이삭은 바람보다 먼저 눕지 않고,
절대로 바람 보다 먼저 일어나지 않습니다.
바람이 지날 때에만 밀 이삭은 싱그럽게 요동을 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을 체험한 사람,
즉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 이들은 교회 안에서 싱그럽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싱그럽게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침묵 가운데 성령의 이끄심에 자신을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을 맞이해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비추어주시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사람만이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이신 성령께서 오시기를 청할 수 있습니다.
자기 안에 자기가 가득 차 있는 이에게는
성령께서 움직이실 공간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시는 성령을 뜨겁게 체험한 사람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그분을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하다는 것(필리 3,8)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성령을 체험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특별한 은사를 교회 공동체를 위해,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잘 분별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루살렘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
즉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루카 24,49)는 말씀을 잘 지켰습니다.
그런데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는 안식일부터 일곱 주간이 지난 뒤에
밀 수확을 위해 정해놓은 축제인
오순절(주간절)이 되었을 때(레위 23,15-16; 민수 28,26; 신명 16,9)
제자들은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사도 2,2)를 듣게 됩니다.
여기에서
루카복음사가는 하느님께서 나타나심을 뜻하는 용어(탈출 19,16)를 사용하면서
밀 이삭이 여물어가는 들판이 바람에 의해
바다의 파도가 출렁이는 것과 같은 장관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때에 제자들은 불의 모양을 보게 됩니다.
바람과 더불어 하느님의 나타나심이 이제는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보이는 불(루카 3,16; 시편 104,4; 탈출 3,2; 14,20.24; 1열왕 19,11-12)로 표현됩니다.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듣고 본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이제껏 듣지 못했던 표현들을 과감하게 끌어들이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마치 성령강림의 현장에 있지 않았던 바오로 사도가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갈라 3,2; 로마 8,4-11; 1코린 12,3-5; 에페 1,13)
말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제자들과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뜨거운 불이 끓어오름으로 성령의 현존을 체험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두 하나가 되었다는 의식이 갖게 되었으며,
온 세상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널리 퍼뜨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투철했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유다인들에게는 물론이요
여러 부족들에게
예수님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는 일이 놀랍게만 여겨졌습니다.
원래 오순절이란
시나이 광야에서의 계약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계약의 정신(예레 31,31)을 되새기던 유다인들의 축제였습니다.
루카복음사가는 시나이에서 맺은 계약에 대하여 직접적인 언급이 없지만
그 정신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하게 예루살렘에 있던 유다인들에게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서 모여든 모든 유다인들에게도 성령께서 내려오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고(사도 2,4),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들으면서 어리둥절했었다는 것(사도 2,6)이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계속해서 여러 가지 언어로 표현되고,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들으면서
같은 믿음을 고백하고 있음도 역시 성령에 의한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초기교회의 구성원들이 여러 나라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으며,
아버지께서 약속해주신 성령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명을 예루살렘에서부터 힘차게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였던 많은 지방의 유다인들이
성령을 받은 뒤 제 각기 자기 언어로
그리스도께 대한 증언을 알아들었다는 것은
신앙은 언어를 초월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특히
오늘 제1 독서에서 언급되는 나라들은 모두 15개 지방인데
그 순서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펼쳐지는 순서대로 나타납니다.
서서히 유럽으로 뻗어나가는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수확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유다인들의 오순절 축제를
교회의 시작으로 삼았던 것은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따른 결과이며,
“성령의 새 포도주인 사랑”(아우구스티노, Sermon, 227B,1)을
새 부대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초기교회가 빨리 성장할 수 있었고,
온 세상으로 말씀이 선포되었던 원인은 사도들 스스로 일구어낸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성령의 힘에 의한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령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게 해주시는 힘이요,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원동력임을 절실하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2 독서(1코린 12,3ㄴ-7.12-13)에서 바오로 사도는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 자신을 생각해보십시오.
성당에 나온 첫날부터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할 수 없었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부터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는 “성령은 같은 성령”,
“주님은 같은 주님”,
그리고
“같은 하느님”이라고 하면서
아주 일찍부터 하느님을 삼위일체로 표현하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여러 가지 은사가 있지만 같은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며,
이 은사는 자랑하거나 과시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교회와 공동선을 위해 봉사하라고 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일치할 수 있도록
각자에게 여러 가지 은사를 따로따로 나누어주신다고 하면서
열광주의적인 태도와 독단적인 행동을 견제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요한 20,19-23)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아침에
당신을 버리고 달아났던 제자들(마르 14,50)이 모여 있는 곳에 찾아오셔서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은 당신의 평화(요한 14,27)를 주시는 것이며,
승리한 메시아,
즉 “평화의 군왕”(이사 9,5; 미카 5,4)이
하느님 나라의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실현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을 배반했던 제자들에게 다시 찾아오심이야말로
예수님의 대단한 자비하심을 드러내신 것이듯이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에게
두 손과 피와 물이 나왔던 옆구리(요한 19,34)를 보여주신 것은
죽으셨던 분이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성령을 불어넣어주신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이 누구신가를 다시 확인해주시는 것이며(요한 1,32-33),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도록 성령을 불어넣으시는 것이고(요한 3,3-8),
동시에
인간은 오직 하느님의 숨(성령)에 달려있는 존재임을
확인해주시는 것입니다(에제 37,1-10 참조).
성령강림 대축일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성령께로부터 받는다는 것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성령강림 대축일은
성령께서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심을 고백하면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특히
성령강림 대축일은 우리 인간이 주님의 숨결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이며,
모두 한 성령 안에서 형제임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이렇게 세례를 받은 모든 이들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이시며,
이웃사랑에 매진할 수 있도록 재촉하시는 분이심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제자들과
이방인들이
수확기를 앞둔 오순절에 성령을 체험했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줍니다.
수확을 앞둔 거대한 밀밭은 파도에 의해 출렁거리는 파도 같이 보입니다.
밀 이삭은 바람보다 먼저 눕지 않고,
절대로 바람 보다 먼저 일어나지 않습니다.
바람이 지날 때에만 밀 이삭은 싱그럽게 요동을 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을 체험한 사람,
즉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 이들은 교회 안에서 싱그럽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싱그럽게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침묵 가운데 성령의 이끄심에 자신을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을 맞이해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비추어주시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사람만이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이신 성령께서 오시기를 청할 수 있습니다.
자기 안에 자기가 가득 차 있는 이에게는
성령께서 움직이실 공간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시는 성령을 뜨겁게 체험한 사람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그분을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하다는 것(필리 3,8)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성령을 체험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특별한 은사를 교회 공동체를 위해,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잘 분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