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7주간 수요일2007.5.23.(사행 20,28-38/ 요한 17,11-19)
박해시절 이 땅에 숨어들어온 선교사들의 마음과 자식을 순교지로 보내는 그 부모님의 마음은 또한 어떠했겠습니까? 살아 돌아올 가망성이라고는 도무지 없는 그 죽음의 땅으로 떠나는 선교사의 마음이나, 그런 곳으로 자식을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를 상상해보십시오. 어떤 세상적인 가치도 그 마음을 설명해줄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신앙이라는 그 가치만이 이 무모한 행위를 설명해줄 수가 있습니다.
“사사로운 일에 목숨 걸지 마라!”는 말을 가끔 합니다. 이 말을 뒤 바꾸어 생각해보면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목숨을 걸만한 일에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뜻도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박해시대에 선교사들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던지는 것은 자신들이 순명한 그 일이 목숨을 내어던질 만큼 가치를 지닌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은 절대적 가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절대적 가치로 받아들여진 신앙은 자신의 절대적 가치인 목숨을 내어 바칠 수가 있게 하였습니다.
선교사들이나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드러냈던 신앙의 절대적 가치가 오늘날에는 너무나 훼손되어 사실 마음이 참으로 아픕니다. 열심하다는 신자조차 신앙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만 상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주일에 무슨 중요한 일이 생기면 성당 가는 것과 그 일을 비교해서 그 일이 더 중요하다면서 성당을 포기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쯤하면 되겠지”라는 유혹에 자꾸 빠집니다. 이런 것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주의적인 사고입니다. 상대주의적인 사고는 우리를 적당히 편하게 살아가도록 유혹합니다. 이런 사고는 죄까지도 상대화시켜 자신의 죄를 합리화시키도록 유혹합니다.
묵시록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15-17). 이 자리에 있는 우리부터 신앙을 절대 가치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절대 가치는 절대적인 나의 목숨을 내어놓게 합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줄곧 사도 바오로의 복음전파의 자세와 그의 열정을 묵상하여왔습니다. 사도 바오로에게 있어 신앙은 절대적 가치이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절대적 가치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절대적 가치였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상대화 되어가는 이 시대에 신앙을 절대적 가치로 받아들이는 참 신앙인 한 사람이 바로 나로 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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