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와 함께하는 묵상> : † 비빕밥과 따로국밥 †
이번 주 내내 빵에 대한 묵상을 하다보니, 어느덧 내 머리 속에는 단팥빵과 찹쌀모찌(?:이 단어가 맞는 지 모르겠음)가 빙빙 떠오르면서 입에 침만 가득 고입니다. 저는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귀국하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단팥빵입니다. 혹시 잘 아는 형제자매님들께서 식사라도 한끼 대접하겠다고 하면, '응, 됐어요, 그럼 단밭빵 하나만 사주구려'...라고 말을 한답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아무도 단팥빵을 사주시는 분이 없었습니다. 경기가 안좋아서 그런지....그래서 그냥 입만 다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님께서 제 귀에다 대고 물어보시는 것 같습니다. '이놈아, 너는 내 빵을 먹기(영) 위해 입안에 침물이 가득고인 적이 있느냐??????'....정신이 화들짝 들면서 좀 부끄러웠습니다. 혹시 여러분께서는 주님의 성체(빵)을 영할 때 너무 먹고 싶어서 침물이 가득고이고, 배에 쪼르륵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지요? 그래서 너무너무 주님의 빵이 그리웠던 적이 있는지요? 저는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으례 때가 되면 먹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간절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누구 말마따가 아직도 배가 기름기가 끼어 있고, 냉장고에 먹을 것이 넘쳐 있으니...다시말하면 육적으로 풍족하니까, 그까짓 빵 먹어도 그만, 이번 주에 못 먹으면 다음주에 먹지 하면서...주일미사도 건너뛰고...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만약 빵, 양식이라고 하지 않고, 건강식품 또는 약이라고 했으면 우리가 어떻게 했을까요? 시셋말로 '비아그라'같은 고단위 정력제라고 했으면, 하루에 더 몇번씩 미사를 참석하면서 성체를 영하려고 눈이 벌겄을 텐데,....그지요....(우스개소리입니다.)
어린아이들이 감기에 걸리거나 배탈이 나면, 고단위 항생제를 먹이는 것이 좋치않아, 때로는 과자부스러기를 약이라고 하면서 차방해 주는 의사가 있다고 합니다. 또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엄마 손을 약손'이라고 하면서 아픈 자식들의 배를 문질러주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고 과자부스러기를 먹여도 낫고, 엄마가 따뜻한 손으로 배를 만져주면 낫는 것이 우리들의 인체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어린아이들의 믿음이 그만큼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영이 맑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은 무조건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복음에서 유다인들은 빵은 먹고 싶지만, 아니 먹지만 주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아무 효과를 보지 못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과거전력을 들먹이면서, 도대체 믿으려하지 않습니다. 수근거리기만 합니다. 우리들 모습으로 비유하면, 똑같은 감기약을 제조해 주는데, 어느 약국에서 약을 사서 먹으면 별로 효과가 없고, 어느 약국에서 조제한 약을 먹으면 금방 감기가 떨어져 나가고,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차이는 우리 마음, 생각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해주는 것에 대해서는 무언지 모르게 좋은 일만 있을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별로 마음이 들지 않는 사람이 해주는 것은 무언지 모르게 기분이 찜찜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벽입니다. 차별을 둔다는 것입니다. 자기 패거리를 만들어 자기만족 지역(Zone)을 만들어 경계선을 둔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분열이 나고, 개인 또는 집단의 이기심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회학에서는 '차별화'라는 말을 매우 매력적인 단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에서는 절대로 차별화가 없습니다. 보편화 공통화가 최고의 선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가톨릭이란 차별화가 아니고 보편화, 공통화라는 뜻입니다. 유다인들은 생태가 차별주의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생태가 비차별주의 즉 보편화입니다. 여기서 주님의 공생활은 유다인과 끊임없는 충돌이 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누군가와는 다른 차별화된 생활을 하고 싶지요? 그러면 가톨릭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유다교를 믿어야 합니다. 가톨릭인은 누구와도 구분없이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는 눈에는 가톨릭 집단내에도 비차별화, 보편화가 눈에 잘 뜨이지 않습니다. 굳이 시기와 반목 암투 등은 일부 소수의 사람들이라고 치더라도, 대부분의 신자들의 모습에서도 보편성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어제는 해운대 신시가 아파트 단지에 볼일이 있어 다녀 왔습니다. 같은 성당을 다니는 앞집과는 잘 교제하지 않고, 이웃단지에 있는 잘 아는 사람과 자주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하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언가 교리를 잘 못가르치고 있다는 부끄러운이 내마음 속 깊이 밀려 왔습니다. 한집에 모이면 되는 것을 대문을 서로 보는 두집에 각각 따로 들렀습니다. 제가 강제로 모이게 하면 되겠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어두운 영이 걷어내야지 강제적으로 그날 합친다고 해서 계속에 되겠습니까? 똑같은 주님의 밥을 얻어먹으면서 따로국밥을 먹는 우리 신앙의 현주소입니다. 물론 일부분이겠지...하고 애써 자위를 하면서......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에게 해준 대화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양스테파노의 묵상에서 본 글입니다.
한 수도원에 밥만 많이 먹던(아무리 아파도,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두 그릇씩, 그것도 고봉으로) 수사가 한 명 있었습니다. 많이 먹다보니 몸도 나게 되었고, 몸이 둔해지다보니 작업시간에 별로 도움도 안되었지요. 뿐만 아니라 기도시간에 졸기는 또 얼마나 조는지...
이를 늘 눈여겨보던 다른 한 수사는 매끼니 꼬박꼬박 밥 두 그릇씩을 게눈 감추듯 하는 그 수사가 무척 못마땅했습니다. 자신은 한번도 밥을 한 그릇 이상 먹어본 적이 없었을 뿐더러, 언제나 철저한 극기와 절제의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밥만 축내는 형제가 어찌나 미워 보였던지...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덧 둘 다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되었습니다. 고행에 열심이었던 "밥 한 그릇 수사"는 당연히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지요.
천국에 들어가게 된 "밥 한 그릇 수사"는 여유 있게 천국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었습니다. 매일 밥만 축내던 그 수사, "지옥 아니면 적어도 연옥쯤 있으려니"했던 그 수사가 자기와 똑같이 천국에서 산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밥 한 그릇 수사"는 즉시 베드로 사도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따졌지요. "이거 해도 너무한 것 아닙니까? 하느님은 정의의 하느님, 공평하신 하느님이라고 늘 강조하셨는데, 완전히 뻥이었네요."
묵묵히 듣고만 있던 베드로 사도가 이렇게 상황을 설명하였습니다.
"자네, 혹시 단 한번이라도 저 친구 마음 깊숙이 들어가 본적이 있는가? 사실 저 친구, 적당량은 밥 두 그릇이 아니라 세 그릇이었다네. 원래 세 그릇을 먹어야 했었는데, 저 친구 그걸 참느라고 한평생 얼마나 고생했는지 자네는 모를걸세. 그렇다면 결과는 당연히 천국이지."
우스개 소리 같지만 하느님의 시각과 인간의 관점, 하느님의 사고방식과 인간의 사고방식이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잘 설명하는 이야기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두자매님도 그랬습니다. 한사람은 간부이고 한사람은 일반신자인데 서로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있었던가 봅니다. 저는 내용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만 여기에 쓸 글은 아닙니다. 어쨌든 수사들의 우화와 같이 상대방 동료가 잘 안되었으면 하는 내용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상상이나 인간적인 사고구조를 완전히 초월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을 뵙게 되는 날,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에서 펼쳐질 상황은 너무도 뜻밖의 것이어서 기절초풍할 정도일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인간적인 계산방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 인간의 사고구조를 훨씬 능가하는 특별한 나라입니다.
주님의 빵을 먹는 자들은 똑같아야 합니다(적어도 신앙생활에서는). 어제복음에서 주님의 빵을 주님의 밥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가톨릭에서 신자들에게 주는 주님의 밥은 비빔밥입니다. 따로국밥이 아닙니다. 똑같은 주님의 비빔밥으로 오장육부와 영혼을 세탁하는 자들은 모두가 한가지 색이어야 합니다. 백색이어야 합니다. 주님의 빵을 먹으면서도 자기의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검은색을 버리지 못하는 자들은 마지막날에 그 빵을 먹은 숫자만큼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의 빵은 간식이 아닙니다. 어떤 강력한 세제보다는 더 강력하게 우리를 세탁시키는 영입니다. 부디 가톨릭이라는 뜻에 맞게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오늘도 기도드립니다.........(아멘).......◆
-말씀편집 : 두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