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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희 수사 (예수회)
종소리 은은한 가운데 부활찬송 (Exsultet)을 부르며 예수부활의 기쁨을 맞이하며 초면인 옆 사람과도 뜨거운 평화의 인사를 나눈 부활미사 때는 뭔지 모를 가슴 뭉클한 환희를 느꼈다. 부활주간 미사 때나 갖은 기도문 뒤에 따라오는 알렐루야를 소리높이 외치는 동안 벌써 부활 3주가 지나간다. 이제는 마음을 가다듬고 부활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참된 의미와 소위 기독교 신앙은 부활신앙이라는 언급에서 나타나는 부활신앙의 핵심을 음미해 보아야 할 때이다.
예수부활에 대한 신앙은 유기체와 같은 성장과정을 겪게 된다. 오늘복음에서는 부활신앙의 의미심장한 여정이 잘 나타나 있다. 바로 앞장인 20장에서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자 제자들은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를" 정도 로 환희를 체험한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만났고 예수로부터 중요한 선교의 사명을 받는다. 이러한 풍요로운 부활의 체험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아직 그들 공동체의 활동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찾지 못하고 낯익은 티베리아 호숫가로 다시 돌아온다. 하루, 이틀 , 사흘, 아무리 기다려도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무료한 기다림의 시간 속에 역시 충동적인 베드로가 먼저 "나는 고기나 잡으러 가겠다"하고 나선다. 다른 제자들도 따라 나선다. 그리하여 그들은 몇 해 만에 다시 고기배에 올라 그물을 가지 고 한밤을 세웠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한다. 이렇게 오늘 복음 이야기는 시작된다. 오늘 이야기를 머리 속에 조용히 그려보면 한 폭의 수채화를 보듯 평화롭게 느껴진다. 한사람이 언덕에 서서 고기떼를 내려다보고 배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물을 어디에다 던지라고 목소리 를 높이며 손짓으로 가리킨다. 달빛 속에 비친 그의 모습이 신뢰를 자아낸다. 멀리서 동녘이 터오자 언덕에 서 있던 사람은 밤새 애쓴 배안에 있는 사람들이 춥고 배고플 것을 생각해서 주위에서 마른 장작을 모아다가 손수 아침을 준비한다. 뭍으로 올라온 사람들은 불을 쬐며 잡은 고기로 아침식사를 하며 소곤소곤 이야기 꽃을 피워 나간다. 참으로 평화롭다. 이와 같이 부활사건의 근저에는 평화가 흐른다. 예수부활을 맞이하며 느끼는 환희는 이러한 평화로움의 극치에서 표출된다. 뜨겁던 환희가 지나가도 진정한 예수부활의 체험은 내 면 속의 잔잔한 평화로움으로 남아있게 되고 성장의 과정을 겪게 된다.
조반을 끝내자 장면이 갑자기 바뀌어 약간의 긴장이 흐른다. 갑자기 예수가 베드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아직도 베드로의 가슴에는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부끄럽고 슬픈, 잘 풀릴 것 같지 않은 아픔이 남아 있다. 조금 전에 "와서 아침 을 들어라" 하던 그 어지신 분이 분위기와는 전혀 맞지 않는 질문으로 분위기를 흐려 놓고 있다. 두 번, 세 번 똑같은 질문을 하신다. 얼떨결에 세 번 대답을 한 베드로는 마지막 대답을 하고 나서야 똑같이 질문한 이유를 어렴풋이 깨닫는다. 예수를 세 번 부인했기에 베 드로에게 자신의 사랑을 긍정할 기회를 세 번 주신 마음 씀씀이를 느낀 것이다. 살아가면서 일에 쫓기고 세파에 묻혀 조금씩 멀어져만 가던 예수와 우리의 관계는 사랑을 통해서만이 온전히 회복된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인간이 되시고 인간의 한계를 체험하고 결국 에는 죽음의 구렁속에 스스로를 던지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은 베드로에게 두 가지 선물을 가져온다. 양들을 잘 돌보는 일과 십자가 형틀에서의 죽음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사랑은 책임과 희생을 수반한다.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사랑을 보게 된다. 왜곡된 사랑 때문에 많이들 아파하고 사람들이 버려지고 있다. 내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지는 거기에 수반되는 책임과 희생을 기쁘게 감수할 용기가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예수가 우리에게 남겨주신 사명을 실행하고 그에 수반되는 어려움을 기쁘게 받아들일 때만이 예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양을 돌보며 "나를 따르라"고 한 예수의 말씀을 통해서 소위 성교회의 큰 목자가 된다. 아마도 많은 제자들이 예수를 따라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소위 골목대장 역할을 한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한 그 순간부터 그들 제자무리의 수장 자리를 탐냈을지 모른다. 서로 서로를 비교하는 소문들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그런데 가십에 자주 오르내리던 명철한 머리에 위대한 사고력을 가진 요한도 아니요, 땅끝까지 예수의 복음을 전한 바오로도 아닌 항상 덤벙되고 실수만 하는 베드로를 예수께서는 교회의 수장으로 뽑으신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예수의 잣대는 우리의 잣대와 다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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