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성 신부 (예수회)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 그에게는 온통 모순적인 것으로 가득 차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그는 예수님의 충실한 제자이기도 하였지만 어떠한 면에서 허풍장이이며 겁쟁이이고 배반자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모습을 우리는 성서 여러 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요한복음 13장 36-38절은 예수님은 그가 자신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한다. 이러한 예고가 있기 전에 이미 절정에 다다른 베드로의 허풍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가시는 곳 어디든지 같이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인간들의 나약함을 이미 예수께서는 간파하고 계셨다. 사실 대단할 것 없는 베드로도 그러한 인간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베드로는 사실 예수님을 사랑했기보다는 자신의 욕심에 가득 차서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지금은 내가 가는 곳으로 따라 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 오게 될 것이다.”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된다. 그는 예수의 죽음에 동참하기는커녕 배반자로 머물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만은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사랑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덤이 비었다는 말을 듣고 그는 곧바로 무덤으로 뛰어갔고 또 다른 제자보다 무덤에 늦게 도착하였지만 무덤 안으로 먼저 들어가는 용기를 보이기도 한다.
티베리아 호수에서 베드로는 다시 한 번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이 세 번째 만남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을 묻는다. 그런데 그 세 질문의 강도가 다르다는 것이 눈에 띈다. 첫 질문은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였다. 두 번째 질문은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였고 세 번째 질문은 “나를 사랑하느냐?”였다. 이에 대한 베드로는 사랑한다고 시종일관 대답하였다. 그 대답 안에는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도 없고 또 정말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과장도 없다. 그는 단지 하나의 보잘 것 없는 실수투성이의 인간으로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만 대답한다. 그것을 예수님이 모르실 리 없다고 말할 뿐이다.
13장 37절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 가고자 했을 때 예수님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세 번째 발현에서 베드로의 사랑을 세 번 확인하고서는 예수께서는 ‘나를 따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주님의 양떼를 돌보는 일과 또 이 일 때문에 결국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려가는 것이라고... 사랑은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 인간들을 위하여 사는 것이라고... 그리고 사랑 때문에 폭력을 당할 것이라고... 그러나 예수님 자신이 보여주었듯이 사랑은 폭력에 의하여 짓밟히더라도 결국은 승리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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