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 요한 3, 1-8
오늘 복음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라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복음서의 다른 많은 부분들을 보면, 예수께서 특정 개인과 친히 대화를 나누면서 하느님나라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드물게 보는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군중을 상대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직접 대화를 했던 니고데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바리사이파 사람이었고, 유다인의 최고 의회에 속해 있던 지도자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아마도 예수님을 유심히 관찰하였을 것이고, 예수님을 예언자와 같은 인물로 생각하고 예루살렘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해온 문제 즉 메시아의 기다림 하느님 나라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에 대하여 예수님의 의견을 들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들에 감탄하면서 예수님께 말을 건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가 하는 말의 참뜻을 알아채시고 대답을 하십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느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제시하십니다.
니고데모는 기적을 보고 예수님께 접근하였고,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나라의 사정을 알아보려고 하였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로 난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진정 하느님 나라를 보고 알려고 한다면,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것 외에 또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눈에 보이는 기적,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 한 인간의 삶에 있어, 내면의 깊은 곳에서부터 강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누구도 새로 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강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보고 느낌에 있어 "아! 그렇구나"하고 그것으로 머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내 마음을 움직여 행동의 변화 삶의 변화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하느님을 앎에 있어 - 우리의 신앙과 연관시켜 볼 때 - 직접적으로는 나 자신의 삶에 있어, 예수님의 복음과 가르침이 하나의 지식이나 감동으로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삶에 변화를 주어 이전과는 다른 선택, 즉 새로운 가치관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바로 나 자신일 수 있습니다. 마치 니고데모가 저는 하느님의 나라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예수님 앞에서 나타내 보이려 했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이 하느님 나라에 관해서 내 나름대로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세례전 나의 생활과 세례를 받은 후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나의 생활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습니까 ? 만일 변화한 것이 없다면, 또는 당시로서는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지금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면 우리는 결코 하느님 나라를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진정 내가 하느님 나라를 보기를 원한다면,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것의 본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매 순간 거듭 태어나는 삶을 추구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되새겨 봅시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좋은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