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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우웬의 마지막 일기
어제 밤에 책장에서 우연히 헨리 나우웬 신부의 <Sabbatical Journey>라는 책을 발견하고 읽게 되었습니다. 2001년에 이곳 말씀의 집에서 피정을 했던 개신교의 권미주 전도사(당시)님이 피정을 마치면서 제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담아 선물로 드린다는 글귀가 적혀 있더군요. 그분은 아주 열심히 기도했고, 삶의 여정을 진솔하게 제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분이지요. 아시다시피 헨리 나우웬 신부님은 노트르담, 예일, 하버드 등의 명문대 교수이며 저명한 저술가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캐나다에 있는 정신 장애인 공동체인 나르쉬 데이브레이크 공동체로 가서 10년을 그들과 함께 사시고 안식년 1년을 보내신 후에 1996년 9월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분입니다.
아래의 글은 제가 그의 책에서 첫 일기를 읽고 옮긴 것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옮기면서 이 책을 가톨릭에서 번역하여 출판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혹시 이미 출판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았더니 역시 2003년에 개신교 쪽에서 번역을 했더군요. 언젠가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고 쓴 <탕자의 귀향>이라는 책을 읽었지요. 아주 좋은 책이지요. 번역을 개신교 측에서 했더군요. 그런데 용어나 번역 자체도 오역이나 의사 전달이 잘 안되는 곳이 너무 많아서 안타까웠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가톨릭 신부가 쓴 책은 역시 가톨릭에서 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James River 석양) 나는 소망합니다
1995, 9월 2일, 토. 온토리오, 오크빌.
오늘은 안식년을 맞이한 첫 날이다. 내 안에는 흥분과 설렘, 희망과 두려움이 동시에 일고 있다. 몸과 영혼이 지쳐 있는 상태이지만 이 안식년 동안 하고 싶은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한 해가 마치 넓고 텅 빈 들판에 무수한 들꽃과 잡초들이 자라고 있는 것처럼 내 앞에 펼쳐져 있다. 내가 이 들판을 어떻게 가로지를 것인가? 마침내 이 들판을 다 가로질러 건너편에 다다랐을 때 나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9년 전, 지금과 같은 9월 어느 날 나는 이곳 데이브레이크 (주: 정신장애인 공동체)에 왔었다. 이제 겨우 나는 그때 내가 신학을 가르치던 하버드 대학교를 떠나서 새로운 방주인 이곳에 오면서 내가 지니고 있던 생각이나 감정, 열정 등을 담은 책을 쓰는 일을 끝냈다. 전혀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데 거의 일년이 걸렸었다. 돌아보면, 그 일년이 나에게 주어졌던 내 생애 첫 안식년이었다. 그 해에 나는 처음으로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삶에 점차로 마음을 열게 되었었다. 내가 이제 끝낸 책 <데이브리에크로 가는 길>은 바로 그 첫 안식년에 대한 기록이다.
꼭 9년이 지나서 나는 지금 토론토 근교에 위치한 오크빌에 있는 친구 한스와 마가렛의 집의 작은 방에 앉아 있다. 한스와 마가렛이 안식년의 첫 두 주를 자기들과 함께 지내면서 편안히 쉬라고 하며 나를 자기네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한스가 말했다. “신부님, 그냥 잠자고 먹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나 하면서 편안히 쉬세요.”
아주 이상한 느낌이다. 아주 행복하면서 동시에 좀 두렵다. 나는 늘 이 시간을 꿈꾸어 왔다. 아무런 약속이나 모임이나 강의나 여행이나 편지, 전화 등이 없는 한 해가 나에게 주어지기를 기다려 왔다. 완전히 텅 비어 열려 있는 한 해, 전혀 새로운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온전히 내 맡겨진 한 해를 열망했고, 이제 이렇게 나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무엇을 할 것인가? 과연 내가 아주 유용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손에서 놓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바쁘게 보내는데 익숙하고 거의 중독이 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을 깨닫는다. 솔직히 나에게 이 중독 증세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 나는 이제 내가 관심을 지니고 있는 어떤 것에 몰입하여 바쁘게 보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편안히 소파에 앉아 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런 불안감이 있는 한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있다. 아, 마침내 나는 이제 자유이다! 해방이다!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깊이 느끼고, 몰두해야 하는 모든 것에서 해방이다. 이제 마음껏 기도하고 싶을 때 기도할 수 있다. 지난 9년 동안 내 마음과 정신 안에서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많은 경험들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친구들과 우정을 깊게 하고 새로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자유! 무엇보다 하느님의 천사와 싸워서 축복을 청할 시간이 주어졌다. 지난 3 개월은 마치 수없이 많은 장애물들을 건너뛰어야 하는 장애물경주와도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자주 생각했었다. “내가 과연 이 많은 일들을 끝내고 9월에 안식년을 맞게 될 것인가?” 그러나 지금 나는 여기 이렇게 편안히 앉아 있다. 드디어 내가 해냈다. 나는 참 기쁘다.
내 마음이 기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서 내가 이 안식년을 갖도록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안식년을 갖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그들은 내가 한 해를 완전히 공동체를 떠나는 것에 대해 전혀 죄의식을 지니지 않도록 배려해 주었다. 오히려 내가 다시 바쁘게 보내면 죄의식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말해주었다. 그들은 내게 말했다. “우리가 신부님을 보고 싶겠지만, 신부님이 안식년을 떠나는 것이 신부님에게도, 우리에게도 최선이에요. 알았지요?” 그들은 나에게 몇 번씩 내가 혼자 있으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기도하면서 새로운 삶을 살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삶에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도 좋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내가 내 삶을 단지 내 뜻에 따라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격려가 되는지 모른다. 나는 순명으로 행한다는 생각을 지닌다.
어제 밤 한스와 그이 딸 마야가 데이브레이크에서 와서 금요일 밤 미사에 참례하고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운전하고 오면서 한스가 내게 말했다. “신부님, 이제 더 이상 데이브레이크에 머룰 구실을 찾지 말고 분명히 떠나셔야 합니다.”
그렇다. 나는 이제 아무런 구실도 차지 말고 새로운 여정에 맡겨야 한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신뢰를 지녀야 하리라.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데이브레이크에 오기 전에 늘 그렇게 했던 것처럼 다시 매일 일기를 써야 할 것이다. 나는 자신에게 약속했었다. 가능한 한 솔직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내 안과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일기에 적지 않고는 잠들지 않으리라. 내가 이제 가로지르려는 이 들판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는 까닭에 그것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었다.
나는 이 한 해를 사를르 드 푸코의 기도문으로 시작한다. 이 기도문은 매일 전율을 느끼면서 드리는 기도문이기도 하다.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이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저와 모든 피조물에 이루어진다면, 이밖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도로 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옵기에 이 마음의 사랑을 다하여, 하느님께 영혼을 바치옵니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시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 |
[묵상] 일기 - 류 해욱 신부님
2007. 4. 14. 오전 8: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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