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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해외(중국) 공동체 방문및 회의 참석으로 약 3주간 만나뵐 수 없게 되었네요. 매일 묵상 올리지도 못하면서 이런 인사드리니 쑥스럽습니다. 3주 후에 반가운 웃음으로 만나뵙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고, 갈릴래아에서 만나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제자들은 갈릴래아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만나자는 의도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에 관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본연의 생업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갈릴래아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의 공간이자 시간이라는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티베리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셔서 묻습니다. "무엇을 좀 잡았느냐?"고.
이른 새벽, 날이 밝아 올 때 온 밤을 새워 고기를 잡으려 애쓰던 그들의 피곤한 몸에 대고 누군가 속삭입니다. "무엇을 좀 잡았느냐?" 고.
이 말씀은 일종은 꾸짖음일지도 모릅니다. 당신께서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하고자 초대했던 시간과 공간 안에서 당신 없이 신앙인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다.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모여 배를 저어 호수에 나가 밤 새워 일했다는 것은 고기잡이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최선을 다해 일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침에 빈 배만을 쳐다봐야 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아침입니다. 그들은 지금 새 날을 보고 있고, 새 날을 살고 있습니다. 아침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그분이 보여준 새로운 삶을 새로운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옛날 자신들의 생업으로 돌아가 세상적인 일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당신 없이는 실제로 아무 것도 거두어들일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갈릴래아로 돌아와 던진 그물은 텅 비었을 뿐입니다. 세상적으로 재화를 얻고 사회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더라도 예수님이 없다면 그것은 빈 그물일 뿐입니다. 새 날 새 아침이 밝아오는 시간과 공간이기에 그들이 건져 올려야 할 것이 고기(재화)나 성공적인 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신 예수님과 교회와 세상을 위해 나누어져야할 무엇이 되어야만 비로소 배를 채울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반드시 주님이신 그분과 함께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같은 고기이지만 우리의 빈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이 있고, 같은 고기이지만 우리의 빈 배를 채울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땀을 흘린다 해도 역시 우리의 빈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이 있고, 아무리 우리가 땀을 흘린다 해도 우리의 빈 배를 채울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그렇게 우리의 아침을 밝혀주는 것입니다.
갈릴래아에서 만날 예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 삶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얼마나 건졌냐고? 묻습니다.
주님 없이 그리고 신앙인으로써의 새로운 삶에 대한 인식 없이 밤새 노력한다면 우리에게는 하느님이 주시는 그 어떤 결실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신앙의 새 아침은 그분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고, 신앙의 새 아침은 그분과 함께 삶의 공간과 시간을 나누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 부활의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죠?
옆에 있는 가족이, 옆에 있는 형제자매가 예수님 때문에 사랑스럽게 느껴질 때 우리의 마음은 부활의 새 아침이 될 것입니다. 부활 신앙은 바로 그렇게 새 날에 우리의 빈 배를 채울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아침을 체험하셨나요?
"주님, 사람들 마음속에 담긴 당신을 보게 하시어 그 사랑을 오늘 은총으로 건져내게 하소서. 아멘." |
2007.04.12 /[묵상] 무얼 좀 잡았느냐? - 이회진 신부님
2007. 4. 14. 오전 8: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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