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 아버지께 영을 건네 주셨다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삼킨 밤의 어둠이
아마도 잠시 우리를 지배할 지도 모릅니다.
어제 밤늦게 게세마니에서 체포되어 유다인의 성전으로,
다시 로마 군인들이 있는 빌라도 앞으로 끌려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오늘 보았습니다.
날이 밝아 빌라도 앞에 서서
오직 당신을 보내신 분의 뜻을 따르기 위해 모진 아픔을 견디어 내신 그분께서는
뭍사람들로부터 죽음으로 내몰리어 결국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십니다.
잠시 혼란스럽고 복잡한 일이 벌어졌다가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예수님을 잃은 제자들도 갈릴래아로 돌아가 다시 어부가 될 테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군인들도 다시 군인 신분으로 돌아갈 것이고,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치던 사람들도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가
늘 살아오던 데로 살아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니까요.
한 때 인기를 끌던 영화배우나 가수, 또는 탈렌트가 어느 날 인기가 시들해지면
우리 눈에서, 우리 마음에서 사라지듯이
일주일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 누리던 인기도 이제 다 사라졌기 때문이겠죠.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밤의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답은 하나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더 이상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기 때문이고,
우리의 생활 속에 더 이상 예수님을 기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눈이 더 이상 예수님을 쳐다보지 않고 다른 것을 쳐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분께는 어둠이 되어 버렸고, 그것이 그분께는 십자가가 되어 버렸고,
그것이 그분을 죽음으로 내 몰았습니다.
그런데 요한 복음사가는 여기에서 이상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의 수난기에 의하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원래 성서가 씌여진 희랍어를 주의 깊게 다시 보면,
요한 사도는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이 마지막 순간에 대해서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예수께서 “이제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신 뒤, 고개를 떨구며 당신의 영을 건네 주셨다.”
“당신의 영을 아버지께 건네 주셨다.”
영을 건네주었다는 것이나 죽었다는 것이나 뭐가 다르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요한 사도는 그렇게 쉽게 복음을 써 내려간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거기에는 분명 다른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아주 많은 것을 여기에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오늘이 주님 수난 성금요일이기에 십자가에 대해서만 짧게 묵상합니다.
여러분에게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죽음입니까? 고통입니까? 아픔입니까?
(예, 그럴 수 있습니다.)
요한도 역시 한편으로는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예수님의 고통 속에서, 예수님의 죽음 속에서,
그리고 예수님을 잃은 자신의 상심과 아픔 속에서 그렇게 받아들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십자가는 우리의 끝입니까?
요한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고개를 떨구며 아버지께 당신 영을 건네주셨다는 의미는
십자가가 끝이 아니라
아버지께 우리의 영혼을 되돌리는 영광의 순간으로 가는 길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로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기도 하지만,
때로 어려운 순간들을 보내기도 합니다.
행복한 시간이 오면 우리는 주님이 함께 하심에 감사할 줄 압니다.
그런데 어려운 순간이 오면 왜 주님은 내게 이런 십자가를 주시는 거야! 하며
십자가를 피하려고 합니다.
가능하면 삶 속에서 십자가를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더 어둠 속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영과 아직 만나지 못할테니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십자가를 매고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죽으라는 것인가요?
요한은 많은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먼저 집착을 버리라고 이야기합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은 당신 어머니에게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
요한에게는 이분의 너의 어머니이시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니 어떻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한의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미 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꺼야! 누구도 건드릴 수 없어. 난 이것만은 포기 못해!” 하며
자신이 겪는 문제를 놓지 못할 때
우리는 어둠 속에서 죽음을 체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내가 남편이니까? 내가 주인이니까? 내가 너 보다 힘이 세니까? 내가 너보다 똑똑하니까?
나에게 속한 것이기에 나만이 가져야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어쩌겠습니까?
결코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이 겪는 문제를 자기만이 해결할 수 있다며 속으로 끌어안고 끙끙 앓는다면
그 결과는 뻔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체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쩌란 말입니까?
만약 여러분이 요한 사도에게 그러면 어쩌란 말입니까? 하고 물어보신다면,
요한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당신의 영을 아버지께 건네주십시오.”
“예수님처럼 당신의 십자가를 아버지께 건네주십시오.”
“예수님처럼 당신의 문제를 아버지께 건네주십시오.”
그러면 3일 뒤에 당신에게 영광이 돌아올 것입니다.
잠시 잃어버린 것 같지만 당신의 삶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제 가련한 영혼을 받아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