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부활의 기쁨을 함께 합니다.
형제 자매님,
부활 낮 미사에서 우리가 처음 듣는
제1독서는 베드로 사도가
이방인인 코르넬리우스와 그 가족들에게 행한 설교의 내용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코르넬리우스와 그 가족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에 뻗쳐나가 만인을 포용하게 됩니다.
이 설교에서 베드로 사도는 세 가지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먼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이라 자처하던 유다인들이
인간이 되어 오신 하느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둘째,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증인으로 택하신 사람들 즉 사도들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사도들이 환시를 본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도 했다고 증언합니다.
셋째,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사람들의 신앙과 희망의 기초가 됩니다.
이제 인간이면 누구나 구원에로 초대받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전하면서
빈 무덤의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아직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의 사랑받던 제자가 빈 무덤에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사도들의 증언을 듣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무덤이 비었다’는 증언만으로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먼저 무덤으로 들어갔고 똑 같은 장면을 다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가 믿었다’라는 표현은 쓰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본다고 다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보는 것을 기초로 해서 깊이 성찰할 때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무덤에 들어가서 그곳의 상황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 하신 말씀들을 되새겨 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실 때,
유다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권한을 지녔음을 보여줄 표징을 요구하자,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빈 무덤을 보고 부활의 신비를 깨닫도록 이끌어 준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나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실제로 뵙게 됩니다.
그때부터 사도들은,
오늘 제1독서에서 본 베드로 사도처럼,
부활의 증인으로서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했습니다.
또 그 선포를 뒷받침하듯이
기쁨에 찬 생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기에
당시의 사람들이
‘그들의 기쁨에 찬 삶을 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삶을 보면서
‘저들은 어떻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기뻐할까?’
‘저들은 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까?’를 생각해봤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기쁨과 용기가 부활 신앙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도 교회의 선포를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들었고,
교회의 삶을 보았기에 믿게 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토마스에게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믿기 위해서 보는 것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뵙지는 못해도 교회의 증거하는 삶은 보아야 합니다.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면
우리의 생활 역시 기쁨이 충만한 생활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쁨에 찬 삶의 모습으로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들 역시 성경 말씀을 듣고
우리의 기쁨에 찬 생활을 보게 될 때
‘보고 믿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아직까지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참되게 증거하는 삶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책임입니다.
형제 자매님,
그래서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하는지 일깨워 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기에
세례성사를 통해서 그분과 함께 죽고 그분과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사도의 말씀처럼, 천상의 것들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부활은 단순히 다시 살아나는 소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향해서 영광 속에 들어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는 누구나 매일의 삶에서 부활을 체험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매일 예수님과 함께 죽어서 함께 묻혀야 합니다.
죽음이 없으면 부활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을 갖고
일상생활 가운데서 형제를 위해 스스로를 낮추고 죽이는 사랑의 행위는
고통이 아니라 참된 기쁨입니다.
그런 기쁨에 넘치는 사랑의 삶을 살 때,
우리의 이웃들도 우리를
‘보고 믿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삶을 산다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당신 부활로 영원한 생명을 얻어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그 기쁨을 항상 누리면서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은총을 구하면서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대구 신학교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