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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복음에서도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듣기에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한다고
돌을 들어 던지려고 하였는데, 오늘도 다시 예수님께 다시 돌을 던지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복음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앞선 복음을 찾아보면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더 이상 자신들의 속을 태우지 말고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요한 10,24)하고 계속해서 예수님에게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정치적인 메시아가 되어 달라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들은 내 양이 아니기에 내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한다.”(10.26-27 참조) 고 그들을 꾸짖는 말씀을 하시는 한편,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10,30) 라며 오히려 그들에게 실망만을 안겨 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다시 돌을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합니다. 복음을 읽으면서 예수님도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그렇지만 흔히 사람들은 자기의 말이나 주장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두세 번 이야기하다가 그만 두고 맙니다. 말해 봤자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때로는 자신의 주장이 옳기 때문에 여러 번 자기주장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완강하며 고집을 부리거나 억지를 부리며 들어주지 않고 심지어 우리 편이 안 될 거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험악한 분위기로 위협하면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자 생각하고는 의견을 접고 뒤로 물러납니다. 그러면서 흔히 그러죠. “뭐, 돌 맞을 일 있어! 에이 그냥 넘어가 뭐.” 요한복음은 유독 다른 복음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이렇게 돌로 위협하는 사람들의 폭력성 앞에 자주 놓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간음하자 여자를 위협하는 사람들의 폭력성 앞에서 위협을 받으셨고, 당신께서 아버지와 하나이며 처음부터 계셨던 분이라는 진리에 대한 증언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의 폭력성 앞에서 위협을 받고 계십니다. 사람들의 그런 위협 속에서도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멈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왜 나에게 돌을 던지려 하느냐?”(10,32)며 당신의 생각과 주장에 막혀 있는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서십니다. 그것은 지금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의 이익이나 당신 개인의 의지나 주장을 인정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랑을 증거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도 역시 많은 벽을 보게 되고 부딪치게 됩니다. 자신의 이익이나 편리함에 관한 일로 반대하는 사람들의 거친 목소리 앞에 서게 되서 뒤로 물러나게 되면 그것이 겸손이라며 스스로는 위안을 삼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 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두려움 때문에 혹은 내적 자기 벽인 귀찮음이나 게으름 때문에 뒤로 물러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죽자 사자 달려들지만 하느님의 일은 한 번 접고 들어가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그런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 맞서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당신과 함께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세상과 맞서자고 초대하고 계십니다. “주님, 당신의 이름 때문에 사람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게 용기를 주소서. 아멘.” |
2007.03.30/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 이회진 신부님
2007. 3. 30. 오후 11: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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