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입니다.
복 음 : 요한 8, 51-59
하느님은 나이 많은 아브라함을 왜 부르시었나?
오늘 독서나 복음을 보면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오늘 나이를 먹는다는거에 대해서 아브라함의 도움을 받아 생각을 해 보고자 합니다.
대체적으로 모임을 보면 나이를 가지고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위 단체안에서도 나이가 한살이라도 많고 적음에 따라서
혹은 나이를 속였을때 싸우는 것도 많이 보는데,
한살이라도 어린사람은 모임에서 보면 가만히 있고,
한살이라도 나이가 든 사람은 소위 위세를 떤다는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을 가지고 상대방을 윽박지를 수 있을까?
창세기를 보면 창세기 족보들은 5장에서 11장을 보면,
이스라엘 선조들이 나이를 오래들 사시다가 하느님곁으로 돌아가고 그랬는데
특별히 에녹의 경우는 365년을 살았다고 창세기는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아마 일년365일 이것과 같은 숫자라고 보는데 하느님과 늘 함께 살았다라는 뜻으로
365년 이라고 표현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보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모든것을 버리고 떠난 나이가 75살이었고, 약속하신 아들 이사악을 낳았을 때가 100살,
이쯤되면 어떤분들은 대단하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덴데,
왜 성서에서는 하느님께서는 나이 많은 아브라함을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일꾼으로 세우셨을까?
이것을 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왜 아브라함을, 다른사람도 있었는데....
왜 나이 많은 아브라함을... 그 많은날의 하느님의 일꾼으로 쓰셨을까?
생각해 봐야 합니다.
호주에 어느원주민들은 생일을 맞이하면 축하하는게 아니라
본인이 생각해서 내가 다른사람이 보기에도 올바른 모습으로 변화가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축하를 하게 되지만, 아무리 나이 들어도 다른사람이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축하를 받지 않고 오히려 철 좀 들으라고 생일때마다
충고하는 예식을 갖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나이가 든다는 것, 그거 자체에 의미를 둔다기 보다는
내 삶에 체험속에서 얼마만큼 변화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가?
바로 이것을 느끼면서 사는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서는 아마도 나이가 드신 아브라함을 전면에 내세워서
지금부터 이루어지는 모든일을 사람이 하느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신다는것을 말해 주기 위해서 등장 시킨것입니다.
우리도 내 자신의 모습도, 언제든지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훌륭한 일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수많은 일꾼들!
아브라함을 비롯해서 수많은 인물들이 정말 능력이 뛰어나서
참으로 가진것이 많아서, 남들보다 뭔가 할 것이 있어서,
이래서 하느님 일꾼으로 쓰여진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들에게는 남들과 정말 다른 하느님을 따르는 그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은 그들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소명을 받은 그들은, 여태까지의 자신의 모습, 이것을 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가 살던곳을 버렸고, 또 성모님도 인간적인 욕심도 마음도 다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된것입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 바로 이것이 하느님으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만나는 삶, 하느님을 향해서 늘 떠날 준비를 하는 삶,
늘 바른 하루를 맞이 할 수 있는 삶,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께서 나를 통해서 모두 이루어 주신다.'
신앙인의 모습은 이러해야 됩니다.
내것 보다는 하느님을 먼저 생각 할 수 있는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인천교구 박촌동성당 윤자면신부님 말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