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공생활은 최소 1년(공관복음), 최대 3년(요한복음)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3년간의 활동 가능성은 희박하다.
복음서들의 묘사대로라면,
예수님께서는 비록 나귀를 타고 오시지만
군중들에 의한 요란한 예루살렘의 입성(마르 11,1-11)과 함께 예루살렘에 머무르신다.
이곳에 체류하시는 동안에 주로 베타니아라는 동네에 머무셨다(마르 11,11).
베타니아는 나병환자 시몬이 살았으며(마르 14,3),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가 살았던(요한 11,1; 루카 10,38-42) 곳이다.
누구든지,
어떤 죽음이든지 죽음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나자렛 예수라는 분이 십자가에 처형되셨다는 사실을 깊이 다루어야 한다.
왜 다루어야 하는가?
첫째, 예수님의 죽음이야말로
그분의 역사 속에서 가장 확실한 사실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둘째, 나자렛 예수라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분이 어떻게 살았는지, 즉 그분이 누구였는지,
무엇을 위해 나섰고, 누구를 거슬러 말하고 싸웠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서, 우리 신앙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두려움을 모르셨다.
그분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고(루카 12,49),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은 어떻게 하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루카 12,4; 마태 10,28).
칼의 시간(루카 21,24)과
엄청난 시련과 위험의 시간이 다가왔다(요한 12,27)고 하시면서도
폭력 사용에 대한 물음은 참된 행복의 가르침(루카 6,20-26)에서
철두철미하게 부정적으로 대답하신다.
체포될 때에도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 26,52)고 하셨으며,
체포될 당시에 예수님께서는 무기를 지니지도, 저항하지도 않았고, 단지 무기력했다.
그래서
분명히 정치적 결사로 함께 체포될 수밖에 없었던 제자들이
괴롭힘을 당하지도 않고 그냥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이다.
복음사가들이 전해주는 성전 정화사건(마르 11,15-19)에서
예수님의 도발적인 행동은 하도 짤막해서
참으로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있었던 일인가 하고 의심하게 한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상인들과 환전상들을 쫓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예수님은 속죄 제물로 봉헌될 동물들은 파는 자들을 쫓아내고
환전상의 탁자들과 비둘기 장사꾼의 의자들을 들어 엎었다(마르 11,15).
이것은 하느님의 상징적인 개입이요, 개인적이며 예언자적인 도발이었다.
장사치들과 거기서 이득을 보는 성직자와 모리배들을 거슬러
예수님은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그들을 모두 양과 소와 함께 쫓아냈다고 하면서
요한복음사가는 이 장면을 비상하게 극화시킨다(요한 2,14-15).
기도와 예배의 장소이어야 할 곳의 거룩함을 수호하기 위해
과감하게 시도한 자극적 행위였으며
장차 군인들에게 당하실 모습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런 반응은 단순하게 장사꾼들에게로만 향한 것이 아니라
이런 시장이 들어서게 한 성직자들과 로마의 총독을 겨냥한 것이다.
예수님은 군사력은 물론이요 군중들을 동원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로마 군대가 개입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의 행동이 만일 성전을 무력으로 점령한 것이었다면
안토니아 성곽의 로마 보병대가 즉시 출동했을 것이다.
비록 성전 점령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유다교 교권당국에 대한 틀림없는 도전이었다.
당신의 죽음을 암시하셨던 이 사건(마르 14,58)이 있은 뒤 즉시
대제관들과 율사들은 모여서 예수님을 체포할 궁리를 한다(마르 11,18).
당장은 아니고 며칠,
혹은 몇 시간 미루기로 했지만
예수님 체포 작전에 대제관들이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예수님은 납세 거부를 선동하지도 않으셨다(마태 22,21).
인간 자체는 늘 하느님께 속하는 것임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계급투쟁을 선포하거나 민족해방 전쟁을 선포하지도 않으셨다.
비록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항상 고통 받는 이들과 소외된 이들,
그리고
가난한 이들과 식사를 함께 할 정도로 가까웠고,
민족의 원수인 사마리아인을 때때로
모범적인 신앙인의 예로 내세우면서(루카 10,38-42; 요한 4,7-42)
혁명가들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혁명가였다.
자신의 실천적인 선(善) 안에서 혁명가들보다 더 혁명적이었던 것이다.
참된 행복이 실현되는 나라(루카 6,20-26),
특히 가난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의롭다고 인정될 하느님 나라(마태 5,3.8)에 대한 말씀은
그 어떤 말씀보다도 혁명적이었다.
빌라도에 의해 쓰인 예수님의 죄목이
“유다인들의 임금”(마르 15,26)이었다는 것을 보아서도
예수님께서는 반로마적인 행위를 했다는 것,
즉 정치적 반란자로 처형당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3년간의 활동 가능성은 희박하다.
복음서들의 묘사대로라면,
예수님께서는 비록 나귀를 타고 오시지만
군중들에 의한 요란한 예루살렘의 입성(마르 11,1-11)과 함께 예루살렘에 머무르신다.
이곳에 체류하시는 동안에 주로 베타니아라는 동네에 머무셨다(마르 11,11).
베타니아는 나병환자 시몬이 살았으며(마르 14,3),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가 살았던(요한 11,1; 루카 10,38-42) 곳이다.
누구든지,
어떤 죽음이든지 죽음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나자렛 예수라는 분이 십자가에 처형되셨다는 사실을 깊이 다루어야 한다.
왜 다루어야 하는가?
첫째, 예수님의 죽음이야말로
그분의 역사 속에서 가장 확실한 사실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둘째, 나자렛 예수라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분이 어떻게 살았는지, 즉 그분이 누구였는지,
무엇을 위해 나섰고, 누구를 거슬러 말하고 싸웠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서, 우리 신앙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두려움을 모르셨다.
그분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고(루카 12,49),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은 어떻게 하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루카 12,4; 마태 10,28).
칼의 시간(루카 21,24)과
엄청난 시련과 위험의 시간이 다가왔다(요한 12,27)고 하시면서도
폭력 사용에 대한 물음은 참된 행복의 가르침(루카 6,20-26)에서
철두철미하게 부정적으로 대답하신다.
체포될 때에도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 26,52)고 하셨으며,
체포될 당시에 예수님께서는 무기를 지니지도, 저항하지도 않았고, 단지 무기력했다.
그래서
분명히 정치적 결사로 함께 체포될 수밖에 없었던 제자들이
괴롭힘을 당하지도 않고 그냥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이다.
복음사가들이 전해주는 성전 정화사건(마르 11,15-19)에서
예수님의 도발적인 행동은 하도 짤막해서
참으로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있었던 일인가 하고 의심하게 한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상인들과 환전상들을 쫓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예수님은 속죄 제물로 봉헌될 동물들은 파는 자들을 쫓아내고
환전상의 탁자들과 비둘기 장사꾼의 의자들을 들어 엎었다(마르 11,15).
이것은 하느님의 상징적인 개입이요, 개인적이며 예언자적인 도발이었다.
장사치들과 거기서 이득을 보는 성직자와 모리배들을 거슬러
예수님은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그들을 모두 양과 소와 함께 쫓아냈다고 하면서
요한복음사가는 이 장면을 비상하게 극화시킨다(요한 2,14-15).
기도와 예배의 장소이어야 할 곳의 거룩함을 수호하기 위해
과감하게 시도한 자극적 행위였으며
장차 군인들에게 당하실 모습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런 반응은 단순하게 장사꾼들에게로만 향한 것이 아니라
이런 시장이 들어서게 한 성직자들과 로마의 총독을 겨냥한 것이다.
예수님은 군사력은 물론이요 군중들을 동원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로마 군대가 개입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의 행동이 만일 성전을 무력으로 점령한 것이었다면
안토니아 성곽의 로마 보병대가 즉시 출동했을 것이다.
비록 성전 점령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유다교 교권당국에 대한 틀림없는 도전이었다.
당신의 죽음을 암시하셨던 이 사건(마르 14,58)이 있은 뒤 즉시
대제관들과 율사들은 모여서 예수님을 체포할 궁리를 한다(마르 11,18).
당장은 아니고 며칠,
혹은 몇 시간 미루기로 했지만
예수님 체포 작전에 대제관들이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예수님은 납세 거부를 선동하지도 않으셨다(마태 22,21).
인간 자체는 늘 하느님께 속하는 것임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계급투쟁을 선포하거나 민족해방 전쟁을 선포하지도 않으셨다.
비록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항상 고통 받는 이들과 소외된 이들,
그리고
가난한 이들과 식사를 함께 할 정도로 가까웠고,
민족의 원수인 사마리아인을 때때로
모범적인 신앙인의 예로 내세우면서(루카 10,38-42; 요한 4,7-42)
혁명가들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혁명가였다.
자신의 실천적인 선(善) 안에서 혁명가들보다 더 혁명적이었던 것이다.
참된 행복이 실현되는 나라(루카 6,20-26),
특히 가난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의롭다고 인정될 하느님 나라(마태 5,3.8)에 대한 말씀은
그 어떤 말씀보다도 혁명적이었다.
빌라도에 의해 쓰인 예수님의 죄목이
“유다인들의 임금”(마르 15,26)이었다는 것을 보아서도
예수님께서는 반로마적인 행위를 했다는 것,
즉 정치적 반란자로 처형당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