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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일생의 마지막 저녁을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함께 보내셨다.
그 때에 갈릴레아에서 예수님의 시중을 들던 여자들, 즉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온 여자 제자들도 같이 있었음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마르 15,40-41). 이 날 밤의 식사가 정말 마지막 만찬이었을까? 이 물음은 예수님의 사망 일자를 밝히는 데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되기 때문에 신학적-역사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마르코에 의하면 이 날은 파스카 잔치가 전제되어 있다. “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마르 14,12)이라고 하는 데 이런 말은 유다인들의 습관에서부터 확인되고 있다. 유다인들은 무교절 첫날(목요일)이 되면 그 날(유다교 달력으로는 니산 달 14일) 오후 세 시경부터 성전에서 양을 잡고, 해가 진 다음(니산 달 15일)에 예루살렘 시내에서 해방절 만찬을 먹었다고 한다. 파스카 축제는 엄숙한 축제이기 때문에 그 경축을 게을리 하는 자는 겨레에서 추방되리라고 한다(민수 9,13). 그리고 이 축제는 철저하게 가족축제이며 어린 양의 도살과 제물봉헌은 반드시 해질 무렵에 거행되었다(탈출 12,3-6; 신명 16,2-8). 많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에 몰려와 있기 때문에 축제를 거행할 공간을 발견하기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전에서 장사치들과 대제관, 그리고 총독과 뒷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현실은 예수님에게 매우 거북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해방절과 무교절 하루 전(수요일)에 제관장들과 율사들이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민 것이다(마르 14,1). 해방절 만찬 때 유다인들은 온 가족이 모인 곳에서 이집트의 참상을 상기시키는 뜻으로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쓴 나물을 먹었다(탈출 12,15-20). 그리고 탈출을 기념하기 위하여 어린 양고기를 다 먹고 나서(탈출 12,3-14) 감사기도를 바친 후 포도주를 한 잔씩 마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시고”(1코린 11,25; 루카 22,20)라고 하면서 성찬의 전례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포도주를 마시고, 이어서 유다인들은 짤막한 감사의 시편을 낭송했다. 최후의 만찬에서 찬송가를 불렀다는 것(마르 14,26)도 바로 이런 풍습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식탁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이 왜 이렇게 먹어야 하는가를 질문하고, 가장(제사장)은 반드시 그 이유(이집트 탈출사건)를 설명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성 토요일에 7개의 독서들 가운데 탈출기를 절대로 빼놓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파스카 잔치는 진정 축제의 잔치이기 때문에 느긋하게 놀면서 지냈고, 실컷 먹었던 것이다.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지낸 첫 번째 파스카 잔치에서 허리띠를 매고, 신발을 신은 채 서둘러 먹었던 것(탈출 12,11)과는 반대였다. 이런 축제의 만찬을 해야 하는 날, 예수님께서는 몇 시간 남지 않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아픔이 얼마나 컸던 것인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 때문에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기 곁에 머무르거나 자기를 따르는 일은 위험한 일이라고 한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를 따르는 일이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다(마태 10,37-39 참조).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하느님 나라와 결부시켜서 말씀하신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마르 14,25).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루카 22,18) 여기에서 말하는 그 날이란 바로 죽음의 어두운 밤을 부수고 빛을 보게 될 날, 새로운 계약의 날(예레 31,31), 즉 일체 인간적이며 세속적인 계산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날이며, 오직 사랑으로만 헤아릴 수 있는 날이다. 예수님은 이제 자신의 곁에 다가와 있는 잔악한 죽음의 힘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이 우리를 위해 먹혀질 빵으로, 많은 이들을 위해 마셔질 포도주로 변화될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먹혀질 빵(lehem)으로 이 세상(beth)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생애의 거의 마지막 순간에 결정적인 형태로 완성될 천상잔치로 제자들을 초대를 한 것이다(루카 22,15-16). 다시 말해서 성찬의 전례는 다름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또는 세속적으로 계산될 잔치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위해, 그리고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새로운 친교를 보증하는 용서와 사랑의 잔치로 만들어주시는 것이다(마태 26,28). 그래서 사랑의 잔치에 붉은 포도주(피)가 필요한 것이다.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마르 14,26). 그날 밤 거기서 예수님은 체포되었다. |
[묵상] 성주간 묵상 자료 2 - 방효익 바오로 신부님 2007.03.29
2007. 3. 30. 오후 11: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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