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3.30.금
| 요한 복음 10장 31-42절 | ||
|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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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 사랑의 응답 허찬란 신부 | ||
| 사순절이 깊어질수록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사랑 앞에 나의 믿음이 너무도 약하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됩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짐을 더 무겁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옛날 돌을 들던 유다인들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는 결정적 죄목은 하느님 모독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이 하느님을 자처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그분에게 돌을 던지고 잡으려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지 못하더라도 하는 일을 보아서라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그분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입니다. 요한 복음에서의 믿음은 명사로 끝나지 않고 행위를 수반하는 동사로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따르는 것으로 귀결이 되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예수님이 하시는 표징들도 거부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하느님을 모독한 자로 고발하게 되고 죽이려는 음모를 가시화합니다. 무조건적인 거부의 끝은 하느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사순절 동안 생각으로가 아니라 믿음의 실천으로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며 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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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의 끝 | ||
| “언니,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거 맞지?” 동생이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한다. “너도 알잖아.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그 사랑을 체험했는지.” 동생도 잘 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왜 이렇게 안 될까?” “걱정 마, 기도하고 있잖아.” 새해 첫날부터 갑작스레 백수가 되어버린 동생의 얼굴엔 걱정스러움이 잔뜩 배어 있었다. 그동안 밤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팍팍하게 회사생활을 했으니까 조금 쉬어도 된다고 동생을 위로해주며 우리 가족은 애써 태연한 척 있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백수기간이 늘어나다보니 동생의 믿음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듯했다. 엄마와 동생은 벌써부터 9일 기도를 하고 있었고, 나도 나름대로 9일 기도를 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동안 동생에게는 몇 번의 면접기회가 왔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 포기를 해야 했다. “하느님이 분명 무슨 뜻이 있으셔서 그런 거겠지?” 동생이 먼저 말을 꺼낸다. “그럼! 이때까지 네가 걸어온 길만 봐도 알잖아. 다 그분의 도우심이 있었다는 거.” 청원의 기도가 다 끝나갈 때쯤이었다. 동생이 들뜬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면서…. 취업이 잘 안 되어서 원래 하던 일을 포기하고 다른 방향으로 취직을 생각했던 동생에게 이보다 기쁜 소식은 없었다. “언니, 정말 감사해.” “그것 봐. 될 줄 알았어. 감사기도 열심히 해라.” 나 역시도 동생처럼 때때로 분심이 들기도 했지만, ‘하느님이 이렇게 우릴 가만히 두실 리가 없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미 늦어버렸다고 낙담하고 있을 때, 바로 그 절망 속에서 하느님은 이미 다른 길을 시작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박소영 |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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