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선택 : 평범성, 일상성
-정운진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오늘 하느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시켜 마리아에게 당신의 구원계획을 알리는 장면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온 누리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보잘것없는 시골 처녀를 구원사업의 동반자로 삼으셨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세도 있는 양가집 규수가 아니라, 한갓 시골 처녀에 불과한 마리아를 택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다윗이 계획한 성전이 아니라, 나자렛 촌구석을 택하신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과 보잘것없는 곳이 하느님 구원의 신비가 드러나는 현장이 되었다. 부대끼며 살아가는 도시 한복판이, 땀 흘리며 일하는 작업장이, 또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우리의 처지가 모두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무대가 된 것이다.
한편 마리아는 구세주를 잉태하리라는 축복의 말씀을 전해 들었지만 두려움과 놀라움에 사로 잡혔다. 예나 지금이나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은 불미스러운 일이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에서는 죽어 마땅한 죄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였다. 약혼자가 있는 몸으로서,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는 아이의 잉태를 온전히 하느님께 대한 믿음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한 마리아의 순종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약혼자에게 파혼당하며 심지어는 죽을 위험을 받아들이겠다는 동의요, 결단이었다. 이러한 마리아의 순명은 영원히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하느님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 신자 생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순명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잘것없는 인간의 동의와 수락을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동의 없이 인간을 구원하시지 않는다. 이는 구원을 위해 인간이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하느님께서 인간을 필요로 하신다는 말씀이다. 소박한 곳에서 당신의 뜻을 실현시키시는 하느님과 나약한 인간의 동의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모습은 오늘 복음말씀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에도 하느님께서는 위대한 사건이나 거창한 모습으로 오시지 않고 우리의 일상생활 속으로 조용히 찾아오신다. 즉,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가정과 직장, 그리고 학교생활 속에서 당신의 뜻을 펼치시기 위해 오신다. 하느님께서는 평범한 부엌으로, 일터로, 교실로 우리를 찾아오신다. 그분은 오셔서 우리의 처지와 의견을 귀담아 들으신다.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당신 구원 사업의 동반자가 되어달라고 기다리신다. 그분은 우리 서로가 깊은 대화를 하고, 서로의 의견과 처지를 존중하기를 원하신다.
우리 서로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귀 기울이는 어디에서나 하느님께서는 기쁨과 희망으로 우리에게 오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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