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 요한 5, 1-3ㄱ. 5-16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옛날 동화책에서 가난하고 힘없게 살던 착한 사람이 도깨비 방망이나 요술방망이 덕분에 그의 운명을 완전히 바꾼 얘기를 읽은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도 우리가 소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줄 수 있는 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한번쯤 생각해 보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해줄 수 있는 분이시지만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실 때도 자녀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자녀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신다면, 자녀가 잘못되기 쉬울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기에 부모는 자녀에게 때로는 참는 법을 배우도록 하고, 하기 싫어도 해야할 일과 하고싶어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 생명의 창조주이신 주님은 우리에게 참된 생명과 행복을 주시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주게 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시라면 우리에게 무엇을 아낄 것입니까? 무엇이든지 다 주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에게 참된 생명과 행복을 주시고자 하시기에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의 보고 느끼는 것에 집착되어 잇는 우리들을 보다 놓은 단계로 끌어올리시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고통과 시련을 우리에게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은 요술방망이와 비교할 수 없는 창조주이시고 우리 생명과 행복의 근원이십니다. 주님은 에제키엘 47장 1절 이하의 성전 동쪽 문턱에서 흘러내리는 물처럼 어디든지 생명이 넘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요한 5장 1절 이하의 베짜다 연못 가에서 처럼 38년 간 앓아 누워 있던 병자를 말씀 한마디로 치유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시고자 하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권능과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시련과 고통을 그냥 두시는 것은 절대로 무관심의 침묵이 아니고 보다 낳은 단계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사랑 방식입니다. 별난 사랑방식인지는 모르지만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고통을 당하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지는 십자가를 바라보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내어놓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며, 그분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은 나를 가장 완벽하게 사랑하시는 분, 나에게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는 분이시나, 나를 사랑하시는 방식이 나의 생각과는 다를 뿐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무관심하게 바라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면서 우리가 겪는 십자가를 함께 지시고 그것을 통해 우리를 부활의 생명에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행위는 모든 규범을 초월해서 이루어지시기에 사랑의 한계성을 긋지 않으십니다. 항상 어떤 한계성을 체험하면서 법적 테두리 속에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던 유다 바라사이들에게는 안식일 날 병을 고쳐주신 예수의 행위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진실된 사랑은 자신의 한계성과 규법의 한계성을 뛰어넘어 참된 생명의 힘을 발휘하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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