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 마태 21, 33-43. 45-46 부산 평화방송 애청자 여러분, 어제에 이어서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 구원을 향한 하느님의 심정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그려볼 수 있게 하는 말씀들을 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어떻게 해서 세상에 보내게 되었고, 이 세상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오신 그분이 그렇게도 사랑한 바로 그 인간의 손에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 손수 생명을 불어 넣어주신 그 인간을 당신의 나라에 초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예언자들과 성인 성녀들을 미리 우리들 곁으로 보내셨는지를 생각하도록 도와주고 있는 복음이고, 마침내 당신의 사랑하는 외아들까지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 과정을 그려볼 수 있게 하는 복음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은 하느님 당신과 하늘 나라의 엄청난 신비를 인간을 도구로 하여 인간을 통해서 인간의 언어로 인간의 본성을 통해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일찍이 구약시대부터 이끌어 주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알아듣지 못했을 때는 당신 친히 인간성을 취하면서까지 우리 곁으로 오셔서 당신을 드러내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우리들이었고, 우리측에서 하느님을 거부했고, 아직도 그분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무지와 편견으로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우리 하느님은 이제는 오래 전의 방법이 아니라 또 다른 방법으로 당신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내가 처음 하느님이라는 이름을 들었던 그 때, 바로 그 상황이, 혹은 나에게 예수라는 분을 알게 해 준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바로 그 사건이, 바로 그 동기가 최초로 당신 자신을 나에게 알려주신 때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 순간 내가 하느님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돌이켜 보면 복음 속에 등장하는 소작인과 나를 비교할 수 있고, 하느님을 받아들인 그 이후 내가 어떤 생활을 했는지를 돌아볼 수 있다면 예언자를 예언자로 받아들일 줄 알았던 사람과도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어제도 드러내셨고, 지금도 보여주시고, 그리고 내일도 당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실 주님을 매일 성찬의 전례 중에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수많은 불충실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알려주고 또 드러내 주시는 분을 그렇게 성찬의 전례 중에 또 만나고 있으니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하느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그리스도인답게 멍청한 소작인이 했던 실수를 범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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