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3.9.금.
| 마태오 복음 21장 33-43.45-46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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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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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의 마음 허찬란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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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년 신자들과 함께 ‘체험! 삶의 현장’이란 팀을 만들어 어려운 농가의 일손을 돕는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힘이 들어도 보람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거는 기대는 없다 할지라도 애써 힘을 보탠 농가에서 배신을 당할 때는 얼마나 속상한지 모릅니다. 한번은 잘 가꾼 농장을 주인이 다단계에 빠져 팔아버린 적이 있습니다. 농장주인의 처지가 안타까워 저는 조용히 그가 판매하는 전기요를 하나 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삽시간에 소문이 나서 아주 곤란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제인 제가 자신의 물건을 샀다고 자랑스럽게 알린 모양입니다. “내 아들, 상속자야 알아보겠지” 하고 기대하다 크게 실망하고 노하신 하느님의 마음처럼 저 역시 그 농장주인에게 실망하면서 여지없이 마지막 남아 있던 선량한 마음까지 박살나버렸습니다. 자존심은 물론 교회의 나눔 정신까지 무너져버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사회복지, 자선사업을 생각하며 가난한 이웃을 도우려 해도 자주 머뭇거리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가만히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복음을 들여다보니, 하느님이 너무도 이스라엘을 믿으셨고, 당신의 외아들마저 내놓으시는 무모함을 느끼게 됩니다. 만일 저처럼 사회가 금지시키는 다단계 신자를 도운 사목자가 있다면 다들 처신을 잘못한다고 욕할 테지만 이런 험한 세상 속으로 오늘도 사제를, 신자들을 보내시는 하느님의 마음이 어떠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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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알로시에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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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알로시에 신부의 구호와 교육사업은 부산에서 시작하여 서울까지 확대되었으며, 그의 도움을 받은 한국의 어린이들은 줄잡아 수십만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그는 빈민구호 사업을 한국뿐만 아니라 필리핀 등 동남아까지 확산시켰던 참다운 그리스도의 제자였다. 나로서는 이렇게 훌륭한 성직자와 함께 아름다운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것, 더구나 원하는 대로 찍고 싶은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었다는 것, 내 사진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내 인생의 큰 행운이었다. 소 알리시에 신부를 처음 방문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성당에서 한 수녀에게 소 알로시에 신부를 만나러 왔다고 하자 수녀가 손끝으로 저기를 가보라며 가리켰다. 수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언덕 위에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이 보였다. 이럴 수가, 신부가 이런 곳에서 살다니. 방에 들어가보니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 좁아보였다. 방 안에는 작은 침대와 책상, 타자기 한 대만 달랑 있을 뿐이었다. 소 알로시에 신부는 혼자 사는 데 이 정도면 아무런 불편이 없다면서, 구호금은 내 돈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 맑고 깨끗한 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찍는 가난한 사진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러한 현실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아달라는 호소였다. 사진은 예술이며 구호라는 것을, 한국자선회(소년의 집) 전담 사진가로 있으면서 몸소 느꼈다. 나는 가난을 찍은 게 아니라 가난에 처한 사람들을 찍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가난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찍고 있다. 소 알로시에 신부와 함께한 한국자선회 시절은 내 사진의 방향을 굳건히 해준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최민식 | 예문 | <진실을 담는 시선>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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