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로 - 하느님 밖에는 아무에게도 기댈 것이 없는 사람
부자와 라자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용이라서 따로 상황 설명은 필요 없겠지요. 이 비유 이야기를 들으면서 극이 펼쳐지는 상황 전개와 결말에 대해 여러분들의 반응이 어떤지 솔직히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 부자가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고소합니까? 깨소금 맛입니까? 아니면, 왜 부자가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부자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세올(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했던 악인이 저주 받는 지하세계)에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라는 항변이 저절로 나옵니까?
예수님께서 이 비유 이야기를 들려주신 깊은 뜻이 무엇일까요? 왜 제자들과 일반 군중들이 아닌 바리사이들에게 이 비유를 들려주셨을까요? 부자와 바리사이들이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이 대목을 놓고 묵상하면서 제게 떠오르는 것은 특권과 한계라는 단어입니다. 특권층이 지닌 한계랄까요? 여기서 제가 한계라는 말을 쓰는 것은 열려 있지 않고 닫혀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부자는 자주색 옷과 아마포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자주색 옷은 자홍색 겉옷을 말하는데 예로부터 로마시대의 황제와 일가 귀족들만 입을 수 있는 특권을 상징하지요. 일반적으로 특권을 지니면 자기에게 안주하는 한계를 지닙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자기만 보고 남을 보지 못합니다. 부과 특권을 지니면 자기 세계 안에 갇혀서 밖의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는 특성이 있습니다.
부나 특권 자체가 나쁜 것일 수가 없지요. 구약성서에서도 부는 하느님의 축복이었습니다. 2년 전이었나요? 광고 때문에 한 때 ‘부자 되세요.’가 유행어가 되었었지요. 부자 되라고 축복을 빌어주는 말이 나쁠 것이 없는데, 이 부라는 것이 참 묘한 특성을 지녀요. 대개 부를 지니면 부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지 몰라도, 담장을 치고 그 울타리 안에 갇히게 됩니다. 부자들의 집을 보세요. 담벼락이 얼마나 높은가! 하느님께서 부를 축복으로 주실 때는 그 부를 이웃과 더불어 나누어 쓰라고 주신 것인데, 일단 그것을 지니게 되면 자기만을 위해 쓰고 싶어집니다.
비유에서 부자의 문제는 라자로를 눈여겨보지 않은 것입니다. 마치 소 닭 보듯이 부자는 라자로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보아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지요. 왜냐하면 자기 세계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지요. 자기 밖의 세계를 보지 못했어요. 아니, 자기 식탁에 차려진 진수성찬만 보았지, 그 식탁 아래에서 부스러기라도 받아먹으려는 라자로와 그가 겪는 밑바닥 삶을 보지 않았어요. 시선이 자기에게만 머물러 있으니까 남이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에 대해 무관심하면 하느님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충족되어 있으면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게 되기 마련이지요.
한편 라자로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라자로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도움 받을 길이 없다’라는 뜻이고, 히브리어 이름으로 쓰면 ‘엘사자르 또는 엘리제르’가 되는데 ‘하느님께서 도우신다.’라는 뜻이 됩니다. 아무에게도 도움 받을 길이 없으면 하느님께 의탁할 수밖에 없게 되지요. 라자로는 ‘하느님 밖에는 아무에게도 기댈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영어 표현도 이런 영향을 받았지요. 우리말로 ‘아무도 모른다’가 영어로는 ‘God only knows.’가 되잖아요. 철저하게 가난함을 체험할 때 우리는 하느님을 찾게 됩니다. 하느님께 의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 신뢰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화답송이 ‘주님께 신뢰를 두는 사람은 행복하여라.’인데 ‘부자로 라자로’ 비유의 핵심을 꿰뚫는 말씀입니다. 요즈음 제가 매일 미사강론 준비를 하면서 재미있는 발견을 했어요. 적어도 최근 며칠 동안 화답송이 제 1 독서 전체의 핵심을 요약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복음 말씀을 요약하고 있네요.
부자는 죽은 뒤에야 세상은 자기 홀로 행복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브라함에게 사정을 하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후회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것이 우리 삶임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한번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부자가 지닌 문제는 자기 안에 갇혀서 나누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도 행복도 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실상 나누지 않으면 진정한 행복일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지니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소유 그 안에 갇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늘 열려 있어야 합니다. 시선을 밖에 두어야 합니다. 너무 우리, 우리 것, 우리 수도회, 우리 교회 하면 거기에 매이고 갇히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닌 것에 신뢰를 두지 않고 주님께 신뢰를 두어야 합니다.
주님께 신뢰를 두는 사람은 행복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