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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에제 47, 1-2.8-9.12.
우리는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축일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로마의 주교좌 성전인데, 그 성전의 봉헌일을 기념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이것도 종교의 사대주의는 아닐까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의 일치를 생각해보자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교회의 상징으로 사도 베드로로부터 이어져 오는 모든 교회의 일치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인 아버지를 기억하며 아버지의 때가 되어 모일 때에는 한 마음으로 모입니다. 온 가족이 가장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이죠. 아버지를 기억하는 날은 온 가족을 기억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것처럼 우리는 보편교회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로마교회 주교좌성당의 봉헌일을 기념하면서 단순히 외형적인 성전이 아니라 내적 외적 성전의 의미를 새기고, 우리 교회가 주 예수를 중심으로, 베드로좌를 중심으로, 모두 하나가 되길 바라는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성전의 물이 바닷물을 되살리고(에제 47, 8), 온갖 생물이 되살아나게 된다고 전합니다.(에제 47, 9) 그리고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며 과일이 끊이지 않고 잎은 약이 된다고 전합니다.(12절) 이렇듯이 성전은 생명의 진원지입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예수께서 성전이시기에 예수가 생명의 진원지이며, 예수를 믿는 자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또한 그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서도 생명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예수를 머금은 생명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되살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죽었던 것을 살리는 것입니다. 마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죽어가는 이를 살리듯이, 우리의 사랑이 삶의 의욕을 잃은 이들을 살리는 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과일나무를 자라게 하듯이,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물이 되고, 우리는 그것으로 과일을 탐스럽게 열매 맺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양식이 된다는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 양식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맺는 열매는 그것만으로 아름답다고 여기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가치가 다른 이들에게 양식이 되는 것이죠. 우리 안에는 다른 이들을 살릴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하는 성전을 뒤엎습니다. 사람의 물이 흘러가고, 생명을 주어야 하는 성전이 죽은 문화가 되었을 때, 그분 안에 있는 열정이 얼마나 불타올랐을까 충분히 그분의 마음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죠. 사랑은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습니다. 특히 주님을 향한 사랑은 불의 앞에 더욱더 활활 타오르게 되어 있습니다.(그래도 모든 것을 뒤엎는 예수님의 분노도 가림이 있다. 보라, 과격한 그분의 움직임에 잠시 쉬어가는 음성을! 비둘기 장사들을 보고서는 조금은 수그러든 목소리로 치우라고 하신다. 비둘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이었기 때문이다. 분노하시는 가운데서도 가난한 이들을 바라보시는 아름다운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가?)
성전의 모든 것을 뒤엎는 그분의 행동이 아무것도 생각지 않는 것으로 보이나, 그분에게는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전을 새로 세우는 것입니다. 아니 본래의 것을 찾는 것입니다. 생명이 흘러나오는 성전, 사랑이 흘러나오는 성전, 그 성전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을 살리는 성전, 바로 그것이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께서 바로 아버지의 집입니다. 예수께서 바로 생명의 샘입니다. 그것은 당신께서는 죽음으로서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집에서 살리라고 말합니다. 나의 거처가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고 믿습니다.(주 예수의 약속이기에) 그러나 그 집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러니 지금 예수 안에 사는 나는 아버지의 집에서 사는 것이고, 천국에서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거처하시는 내가 바로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을 살리지 못하는 나를 허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사흘이라는 시간을 기억하면서, 주님과 함께 나를 죽임으로써 제 목숨을 살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내적 삶이 없는 외적인 성전은 무너뜨릴 수 있지만, 아니 무너져야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한 삶을 사는 나를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내가 성전이라고 여기며 세웠던 그 가짜 성전은 무엇입니까? 내가 세우고 따를 성전은 무엇입니까? 나는 과연 다른 이들을 살리는 성전입니까? 나는 주님의 은총으로 인해 맺게 된 내 열매를 기꺼이 다른 이들에게 주고 있습니까? 내 삶의 잎이 다른 이들에게 약이 되고 있습니까? 다른 이들이 죽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해서 나 자신도 죽은 삶을 살면 안 됩니다. 내 모임에서 나는 독설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아픔을 되갚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생명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
나해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나는 생명을 주는 사람 - 조성호 신부님
2006. 11. 16. 오전 9: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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