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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사순 제 2 주일
2007. 3. 4.
토평동.
창세 15, 5-12.17-18.
필리 3, 17-4, 1.
루카 9, 28ㄴ-36.
오늘 복음은 루가 복음 안에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 예수의 첫 번째 수난 예고- 영광스러운 변모- 두 번째 수난 예고의 흐름을 타고 있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즉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느냐는 것이죠.
단지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늘과 땅이 난리 났습니다. 이미 하늘에 오른 모세와 엘리야가 내려와 그분의 영광에 싸여 있고, 땅에서는 베드로가 그 영광에 머물고자 여쭙다가 하느님께 한 소리 듣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늘은 분명 예수님의 영광을 알고 있기에 예수께 내려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섣불리 영광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늘 하느님의 뜻을 좇았던 이들이기에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영광에 싸여 있으면서도 영광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루카 9, 31)
땅에 있는 베드로는 어떻습니까?
제가 서품을 받으면서 택했던 성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께 빌어 얻고자 하는 것은 한평생 주님의 산다는 그것”(시편 27, 4)이었습니다. 정말 한평생 살아가면서 주님의 집에서만 살고 싶은 것이 그때의 마음이었고,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모두의 소원 아닙니까?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소원도 그렇지요? 아니면 다른 소원이 있습니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
베드로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주님께 빌어서 얻고자 하는 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산다는 그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다말고 깨어서 비몽사몽간에 한 말이,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루카 9, 33)라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 때 갑작스레 터져 나온 말이라면, 평소에 가지고 있던 바람이 터져 나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데, 앞뒤 생각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베드로는 참 단순하면서도 솔직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놓친 것이 있습니다. 산에 오른 것도 은총이고,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예수님을 뵈온 것도 은총인데, 베드로는 이 은총 가운데서 무엇인가를 놓쳤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와 모세, 엘리야의 대화입니다.
베드로를 보면 참 놀랍습니다. 왜 기도만 하면 잠을 자는 사람 있죠? 복음을 봉독하고 강론을 시작하려고 하면 일단 눈을 감고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강론하는 시간은 묵상하는 시간이 아니고 말씀을 듣는 시간이고, 잘 들으려면 그 사람의 눈과 몸짓을 보아야 하는데, 저절로 눈을 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의 베드로와 같은 사람이죠. 베드로! 기도하려고 데리고만 가면 잡니다. 그러니 실수할 수밖에요. 내내 주님께서 모세와 엘리야가 나누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얘기 할 때는 잠을 잤으니까 그 영광에 얽힌 뜻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 그럴 수 있습니다. 기도하다 보면 잠을 잘 수도 있고, 다른 이의 뜻을 잘못 알아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다시 그 뜻을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다시 물어야 합니다. 내가 잠시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뜻을 거슬렀다면, 내 맘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뜻을 좇는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하는 말을 들으시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 35)
이것은 베드로의 말에 대한 답입니다. ‘그래, 네가 말한 것처럼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예수와 함께 한평생 살도록 해주겠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네가 함께 하고파하는 예수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듣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졸고 있으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몸짓 발짓 그분의 눈을 바라보면서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조용히 “좋은 몫을 택하”기도 하고, 그분을 따라서 움직이며 듣기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복음 가르치기 위해서 끊임없이 걸으시는데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묵상만 하겠다는 것은 곧 그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사순 시기는 깨어서 그분의 말씀을 온전히 듣겠다는 다짐의 시기입니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축일이 따로 있는데, 왜 사순시기인 오늘 이 보음의 말씀을 우리가 읽고 생각하겠습니까? 내가 삶을 살면서 졸면서 주님의 말씀을 간과한 것이 있다면, 그래서 마치 내 뜻을 주님의 뜻인 양 행한 적이 있다면, 이 시기에 다시 깨어서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
다해 사순 제 2 주일/좋은 몫을 택하 - 조성호 신부님
2007. 3. 6. 오전 8: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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