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 제1주간 화요일 강론
복음 : 마태오 6, 7-15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 세상에는 사실 수많은 기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들은 모두 사람이 지은 기도이지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기도만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 인간이시며 하느님이신 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는 단 하나, 오늘 복음에 나온 주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시며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의 기도는 8가지의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선 주님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주님의 기도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주님의 기도라고 부릅니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처음에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종이고 하느님께서는 주님 즉, 우리의 주인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르십니다. 이 말은 우리를 종의 신분에서 자녀의 신분으로 이끌어 올리심을 뜻합니다. 종으로서 주인의 뜻을 따르는 것과 자녀로서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구절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입니다. 거룩히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사전을 찾아보면 ‘거룩하다’는 ‘성스럽고 위대하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룩하다라는 말의 원전을 찾아보면 거룩하다는 말은 ‘다르다’, ‘분리되다’라는 말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일반적인 것들과 다르다는 말입니다. 속된 우리들의 삶과 세상과 구별된 것이 바로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말입니다. 구별된다는 것은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맹세나 선언을 할 때,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두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두고는 맹세하거나 약속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느님의 이름은 우리가 거론 할 수 없는 거룩한 이름이고 그 이름을 통해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있는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구절은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천국 즉,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의 나라가 오시기를 청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 하느님의 사랑안에 머무는 곳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버지의 나라가 오기를 청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살 수 있기를 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구절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 그곳은 바로 하느님 나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뜻이 하늘나라처럼 땅에서 이루어진다면 땅도 하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이 세상이 하느님 나라가 되기를 바라면서 기도하는 구절인 것입니다.
다섯 번째 구절은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입니다. 우리 인간은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육신의 굶주림을 채워야 하지만 또한 영혼의 굶주림도 채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은 우리 육신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양식이기도 하지만 우리 영혼을 유지할 양식을 청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여섯 번째 구절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입니다. 용서는 잘못한 일을 전제로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잘못을 하였다면 그 대상인 사람은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상처를 준 사람도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 두 사람을 보시는 하느님께서도 상처를 받으실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용서밖에 없습니다. 상처 받은 사람이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고, 상처 준 사람이 상처 받은 사람에게 용서를 청함으로써 그 일들은 마무리되어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도 받으신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일곱 번째 구절은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유혹과 마주치게 됩니다. 특히 이 유혹은 교묘해서 우리들이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건드리며 우리를 죄악으로 인도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유혹을 우리는 구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다 유혹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혹은 숨길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로 다가가는 우리를 붙잡고 멀리 끌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어떤 좋은 일이라도 그 일이 우리가 하느님께로 다가가는 데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유혹이 될 것입니다.
여덟 번째 구절은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입니다. 우리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아무리 피해가려고 해도 죄를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는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죄에 빠져 있을 때에도 우리를 구해주시기를 청해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하느님께 청해야 하는 가장 필요한 것들만을 모아놓은 기도입니다. 또한 이 기도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알려주신 유일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사순시기를 보내는 오늘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그 뜻을 새롭게 이해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사순 제1주간 화요일 /강론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김윤복 신부님
2007. 2. 28. 오전 9:14:04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