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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최후심판의 장면과 더불어 그 심판의 기준에 대해서 알려 주십니다. 특히 주님께서 악한 이들에게 단호하게 내리신 판결의 말씀은 듣는 우리로 하여금 움찔하게 만듭니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우리 각자가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보실 지 하는 것은 우리의 최대 관심사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등장하는 양과 염소로 나뉘어진 사람들의 답변에서 우리는 최후 심판시의 심판 기준을 그들은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러나 그들이 심판 기준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께서는 엄정한 심판을 내리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이 복음 말씀을 통하여 최후 심판시의 심판 기준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그들처럼 의문이나 변명할 여지조차도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단순히 심판 기준이 무엇인지 알았느냐 몰랐느냐 하는 사실 보다도, 그 심판의 기준을 알고서 그 아는 것을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 안에 받아들이고 실천하였는가가 문제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무관심과, 귀찮다는 생각, 또는 내 자신의 희생이나 불편함 때문에, 주위의 사람들 심지어는 가족이라 하더라도, 힘들어 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들의 사정에 대하여 알고도 모른 척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순간, 어느 정도까지는 실천하기도 합니다. 우리 주위에 어려움에 처한 이들, 고통 중에 있는 이들, 더 이상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없다고 여겨지는 이들, 그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입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내어주고 나누는 삶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인류애에 근거한 박애주의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우리 전부를 걸고서 행해야 할 것임을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밝혀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지금 우리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그분의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사순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흐트러진 우리 자신을 다잡으려 희생과 보속을 실천하기로 다짐하였을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실천에 있어서 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보속이라는 소극적인 측면보다도 희생과 극기를 통한 친절과 배려라는 적극적인 사랑 실천이 무엇보다도 절실히 필요로 한 때입니다 |
[강론] 최후의 심판시 심판 기준[장세명신부님] 2007.02.27
2007. 2. 27. 오후 12: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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