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26.월
| 마태오 복음 25장 31-46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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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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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가 소중한 사람 이정호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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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강원도에서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수도원이 공사 중이라 작업복 차림으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삽질을 해야만 했지요. 어느 여름 날 땀을 뻘뻘 흘리며 자매님들이 공사 현장을 찾아오셨습니다. 길이 안 좋아 고갯길을 한참 걸어야 수도원에 닿을 수 있어서 숨이 턱까지 찬 자매님들은 머리에 수건을 쓰고 방수작업을 하고 있던 수사님들을 한참 바라보며 이런저런 불평을 하면서 “아저씨, 여기 신부님 안 계세요?”라고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물어보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신부인데요” 하고 대답했더니 안색이 달라지며 “진작 말씀하시지요. 몰랐습니다” 하며 민망해하셨습니다. 존중해야 할 사람, 대접받아야 할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가 사랑받고 대접받아야 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내가 힘들거나 막상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볼품없어 보이거나 도움이 안 될 사람으로 여겨지면 함부로 대하는 것이 우리네 마음이기도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한 사람이며 당신이 사랑받는 것처럼 사랑받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십니다. ‘주님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변명하지만 우리 모두가 소중한 사람이며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주님을 만나는 길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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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스름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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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다. 누구지? 조금은 불쾌함을 드러내며 돌아보니 한 남자가 작은 손수레에 물건을 싣고 휘적휘적 지나가는데, 자세히 보니 장애인이었다. 그런데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모습이 조금 신선하게 느껴졌다. 다음 정차역이 내려야 할 역이기에 그저 부담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곁에 있던 동료가 “양말 하나 사야겠다” 하며 지갑을 꺼내는 것이었다. 착해빠진 동료는 조금 전 지하철 안에서도 손수건을 팔던 농아인에게 먼저 다가가 손수건 한 장을 샀던 참이었다. 그제서야 화들짝 양심이 움찔해진 나는 동료를 막아서고는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지갑 속에 들어 있던 지폐 한 장을 꺼내 내밀고는 양말을 하나 들었다. 그리곤 자리로 와서 내릴 준비를 하는데 누군가 팔을 치는 것이었다. 돌아보니 그 장애인이 꾸깃꾸깃 접힌 천 원짜리 넉 장을 내밀며 수줍게 웃는 것이다. 그러고는 어눌한 발음으로 양말은 천 원이라며 검지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 그는 거스름돈을 주기 위해 꽤 먼 거리를 급히 달려왔던 것이다. 아니라고 그냥 드리는 것이라고 하면 행여나 마음 상하게 하는 것일까 고민하다가 “양말 하나 더 가져갈께요” 하며 조심스레 거스름돈을 다시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제서야 내 의도를 알았는지 그도 조금 전보다 더 활짝 웃었다. 그의 선한 눈을 보며 나도 웃었다. 지하철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장애인들과 그들이 거의 강요하다시피 던지는 물건들에 사주고 싶은 마음보다 불쾌함과 부담이 앞서곤 했었는데, 이번만큼은 너무나 행복했다. 자신이 가진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선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의 모습이 지금까지의 내 인식을 새롭게 바꾸어 놓은 것이다. 더불어 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앞뒤 생각없이 아니 계산없이 내주곤 하는 착해빠진 동료를 통해 ‘아하, 넉넉해서 나누는 것이 아니구나. 그냥 지금 내가 가진 그만큼에서 나누는 것이구나!’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신효진 | 서울시 강북구 번2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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