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일 2007.2.25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가야만 하는 길 - 하성호 신부님

2007. 2. 26. 오전 9:35:38

글자
사순 제1주일 2007.2.25 (신명 26,4-10/ 로마 10,8-13/ 루카 4,1-13)

우리 사람에게는 하지 말라 하면 꼭 그것을 해봐야 하고, 가지 말라 하면 꼭 가보고 싶은 묘한 호기심이 있습니다. 출입금지 철조망엔 개구멍이 있고,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는 청소년들이 대부분 관람합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예외는 아니었나 봅니다. 그들도 하느님께만 충실하라고 했는데 갖가지 우상숭배에 빠지고 갖가지 세속적인 욕망의 노예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자꾸만 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을 그 모든 이탈의 욕망, 탈선의 욕망으로부터 정화시키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사십년 동안 그들을 시련과 유혹만이 활개를 치던 광야를 떠돌게 하였습니다.

광야는 한 편으로는 하느님의 부재를 드러내는 시련의 장소이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신앙의 정화를 이루어주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오랜 시련과 유혹의 광야생활을 통해 신앙의 정화를 배웠습니다. 노예생활 하던 그 백성이 아무런 시련도 겪지 않고 가나안 땅에 쉽게 들어갔다면 그 민족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광야의 시련을 경험하는 정화의 단계가 없었다면 그들은 그렇게 강인한 민족으로 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금방 가나안 사람들과 가나안 종교와 문화에 흡수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광야의 유혹과 시련이라는 정화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그들은 주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그 믿음을 확고하게 가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 의탁하고 순종하는 신앙의 길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는 사십일 단식하시고 광야에 나가셔서 유혹을 받으십니다. 먼저 악마의 입을 통해 예수님께 제시되는 길은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손쉬운 생활방식의 길, 세속적인 권세를 떨치며 화려한 특권을 마음껏 누리는 세속적인 영광의 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악마가 제시하는 것과 같은 그런 얄팍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성경말씀을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이 비록 고난의 길이라 해도 하느님께 순종하는 길을 선택하십니다. 예수님은 비록 메시아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력과 특전을 다 잃는다 해도 하느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의 길을 택하십니다. 예수님이 생애를 통해 택하신 길은 손쉬운 기적이나 일으키는 화려한 왕관의 길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마감할 고난과 십자가 죽음의 길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어떤 위험으로부터 기적적으로 보호를 받는 특권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택하셨던 바로 그 순종의 길을 자신의 길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자유를 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비록 고난의 십자가를 감당해야 한다 할지라도 하느님께 충실히 순종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아들의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이 세상 그 어떠한 세속적인 가치나 권력이나 출세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쉽사리 출세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재물이나 세속적인 갖가지 권력의 노예가 되기가 쉽습니다. 또한 우리는 일상생활을 통해 하느님을 그저 기적이나 아낌없이 발휘해주는 그런 하느님, 우리 생각대로 요리하는 그런 하느님으로 만들고 싶은 유혹에 참 많이 빠져듭니다. 그래서 우린 일상생활을 통해 만나는 크고 작은 광야의 유혹과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신앙이 많이 흔들리는 것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그것들을 사전에 차단시켜주지 않았다는 원망 때문입니다. 광야는 하느님의 부재를 체험하는 곳인 동시에 신앙이 정화되는 곳이라고 앞에서 말하였습니다. 생활의 시련과 고통 속에서 신앙을 잃는 사람은 하느님의 부재는 경험하였지만, 신앙의 정화는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가야만 밝은 빛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우리에겐 십자가의 삶으로써 다가옵니다.

이 세상엔 수많은 길들이 있습니다. 땅에도 있고, 바다에도 있고, 하늘에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며 마음으로 따라야 하는 도리(道理)도 있습니다. 수많은 길 가운데엔 우리가 갈 수 있는 길도 있고, 가지 말아야 하는 길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가야만 하는 길이 있는가하면, 가지 말아야 하는 길도 있습니다. 물론 그 길들을 선택할 자유는 우리 각자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주성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과 왕관이 아니라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고난의 길, 가시관의 길,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길이 인류를 죽음에서 구원하는 영원불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린 그분을 우리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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