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과의 싸움 - 이성길 신부님 /2007.02.25

2007. 2. 26. 오전 9:32:45

글자

"주님, 그리스도를 믿는 저희가 거룩한 재계로 악의 세계와 맞서 싸우려 하오니, 극기의 보루로 진을 치게 하소서."


사순 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미사의 본기도입니다. 이 기도에 나타나 있는 대로 사순 시기는 악의 세계와 맞서 싸우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수련하는 때입니다.


우리 삶이란 다름 아닌 악과의 싸움입니다. 양심을 따르자니 돈이 울고, 돈을 따르자니 양심이 울고…. 마땅히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도와주려고 하니 몸이 고될 것 같고, 모른 척 하려니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고…. 선과 악은 이렇게 내 안에서 갈등을 일으킵니다. 세상에도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악이 있습니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곧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재의 예식 때 사제는 신자들의 머리에 재를 얹어주며 말합니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너 자신을 알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흙에서 왔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갈 하잘것없고 무상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다면 생명이신 하느님께 속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자신의 실상입니다. 하느님 아니시면 한갓 한 줌의 흙과 먼지에 지나지 않는 우리입니다.  


우리의 적은 악, 악의 세력, 악마입니다. 그런데 악은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과 악이 명확히 구분이 안 되는 때가 많고, 선을 가장한 악도 있습니다. 오히려 악이 더 달콤하고 그럴 듯해 보입니다. 그러기에 악은 위협보다는 유혹으로 다가옵니다.


예수께서 광야로 가셔서 공생활을 준비하시며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이 유혹 이야기는 예수께서 일생 동안 받으신 대표적인 유혹을 극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게 해 보라는 첫 번째 유혹에 예수께서는 성서 말씀으로 대응하십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빵은 육체적인 것, 물질적인 것, 현세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답게 살고 행복하게 살려면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하느님의 말씀의 힘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앞에 엎드려 절만 하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는 두 번째 유혹에 대해 예수께서는 역시 성서 말씀으로 대응하십니다.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예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권세와 영광 곧 돈, 명예, 사람들의 인정, 인기, 권력, 안락함 등을 하느님보다 더 소중히 여겨서는 안 되며, 오로지 하느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하느님 아닌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만이 주인 곧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만을 찬미하고 섬겨야 합니다.


세 번째 유혹, 하느님께서 지켜 주실 테니까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유혹에 대해 예수께서는 역시 성서 말씀으로 대응하십니다.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떠보지 마라."


하느님을 떠본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내 뜻을 들어주시는가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자기에게 맞추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 자기 생각, 자기 욕심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섭리와 자비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유혹을 물리치심으로써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느님만을 섬기며, 하느님의 자비와 섭리를 굳게 믿으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삶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지 못하도록 꾀는 것이 악이며 악의 유혹입니다.


우리와 다름없이 늘 유혹 속에 사셨고 인간의 나약함을 잘 아셨기에 예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통하여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체포되시기 직전 올리브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손자병법에 삼십육계 곧 줄행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도망가는 것입니다.  악의 유혹을 이기는 데는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즉 유혹의 기회를 아예 피하는 것이 악의 유혹을 이기는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책입니다. 물론 이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직접 부딪쳐 이기기보다는 훨씬 쉽습니다.


사순 시기는 악과 투쟁하시는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며 우리도 악을 이기고 유혹을 이길 힘을 기르는 때입니다. 예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올리브 동산에서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 하시며 한탄하셨습니다. 몸이 말을 듣지 않기에 수련이 필요합니다. 사순 시기 동안 자주 듣게 되는 희생, 극기, 금식과 금육재, 자선, 그리고 기도 등은 바로 유혹을 이기는 힘을 기르는 수련 방법입니다. 사순 시기 동안 악과 악의 유혹을 이기는 힘을 기릅시다. 그리하여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느님만을 섬기며, 하느님의 섭리와 자비를 굳게 믿으며 사는 새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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