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 2007.2.21.
마태오 복음 6장 1-6.16-18절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사순 이정호신부
사순은 우리말로 40이라는 말입니다. 40은 성경에서 정화의 기간,
속죄의 기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lent라고 하는데 이 말은
봄을 의미하는 영어의 옛말이라고 합니다. 봄은 겨우내 얼어붙었던 생명이
소생하고 약동하는 때입니다. 부활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사순시기는
우리 영혼의 새 생명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이 태어나는 봄의 시간입니다.
영혼이 살아 있기 위해서 죽음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하느님의 기운을 되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순시기에 우리는 기도와 자선과 단식을 하며 몸과 마음에서
죄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생명의 기운으로 채워갑니다. 기도는 하느님 안에서
생명을 품고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의 고백이며 자선은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으신 주님을 따라 사랑하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내놓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단식은 죽음을 넘어서는
그 사랑의 결심을 곡기를 끊음으로써 몸과 마음에 깊이 새기는 행위입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며 머리에 재를 받으면서 죄로 물든 지난날의
우리 자신은 하느님의 생명의 숨결에 날아가버리고 참된 사랑을 품은
진실한 인간만 남기를 청합시다.
예금 통장
예금통장에 잔고가 얼마 안 남았다
월급날은 한참 남았다
들여다보니 쌀통 김치통 꽤 남았다
냉장고에 시든 고추 파 두어 뿌리
평소엔 살피지도 않았던
뒤 베란다 감자 양파 몇 알도 쓸 만하다
옷장엔 묵었으나 옷들이 많고
책장엔 읽지 못한 책들도 많다
모든 것은 풍요하고 너끈하다
조금 비어서 기분 좋은 위(胃)처럼
잡풀을 쳐낸 생의 앞마당은 여백이 널찍하고
식탁은 신선한 허기(虛飢)로 풍성하다
예금통장이 빈 도시락처럼 달그락거릴 때면
푸석푸석 곰팡내 나는 녹에 파묻혀 있던
낡고 헌 사물들의 말간 얼굴이 보인다
잘 닦으면 은은히 청동빛도 난다
또한 뿌듯한 일,
며칠 지나도 헐렁한 쓰레기통
죄를 덜 지었다는 증거다
가을볕에 잘 마른 무명수건처럼
제법 깔깔해진 마음으론
물기 젖은 누구의 얼굴을 닦아주고도 싶다.
조향미 | 시인,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