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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안내 1-자캐오
루가 복음서에 등장하는 세관장 자캐오를 아시지요?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자캐오라는 인물은 기도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잘 드러내 주고 있는 희화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단지 예수님을 보고 싶은 마음, 그분이 어떤 분이지를 알고 싶은 바람 때문에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길에 있는 무화과나무에 올라가서 미리 자리를 잡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자 하는 열망을 지니고 있다면, 바로 이 자캐오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을 깊이 알고 싶은 바람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야 할지 몰라 서성거리지요?
워낙 키가 작아서 그냥 사람들과 함께 서 있으면 군중에 시야를 가려 예수님을 볼 수 없는 자캐오의 처지는 일상 삶을 살면서 기도한다고 할 때 예수님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우리들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나날에는 우리에게서 예수님을 볼 수 없도록 시야를 가로막는 수많은 군중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일상의 잡다한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때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라는 내 사고 안의 고정된 관념이나 편견에 가려 참 예수님을 볼 수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자캐오처럼 우리만의 무화과나무를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뵙지 못하게 하는 어떤 군중으로부터도 우리를 높이 떠받쳐 줄 수 있는 튼튼하고 높은 무화과나무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자캐오의 이야기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함축적으로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 줍니다. 기도는 바로 자캐오가 그렇게 했듯이 우리의 집으로 주님을 모셔오는 행위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손수 우리 가운데 당신의 거처를 마련하신(요한 1, 14)’ 바로 우리의 집에서 그분을 만나게 됩니다. 기도는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 따로 지성소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집으로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다만 그분을 맞을 마음의 준비만 하면 됩니다. 훗날 우리가 누리게 될 천상 삶에서가 아니라 매일 매일 일상의 삶에서 그분을 만나고 말씀을 듣고 놀라고 기뻐하는 일이 기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실제적인 체험들을 마치 신발을 벗듯이 기도라는 방문 밖에 벗어놓을 것의 아니라 그 실제적인 일상 삶의 체험이 기도 속에 스며들고 그 안에 용해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 속에 자캐오가 지녔던 번득이는 기지와 자발성을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반드시 어떤 형식이나 고정된 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렉시오 디비나’나 ‘성 이냐시오의 관상의 틀’과 같은 기도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고유한 방법이 있습니다마는 우리 각자에게 더 적절한 창조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면서도 아무 위안을 얻지 못하고 메마름을 체험할 때, 기도를 그만두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되지요. 기도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는 방법이 자기에게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새로운 방법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자캐오처럼 우리 역시 군중 속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홀로 설 용기를 지녀야 합니다.
우리는 외부로부터 오는 소음뿐만 아니라 내면에서 일고 있는 거센 파도 소리 때문에 주님이 들려주시는 고요한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마음의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그것이 무화과나무에 올라가는 어린애다운 행동일지라도 개의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지니고 있는 기도에 대한 어떤 고정관념이나 형식이 효과적인 기도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지요. 바로 이런 생각이 성령이 우리 마음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하시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지나친 자의식이 기쁨에 넘쳐 손뼉치고 춤추며 노래하는 성령의 활동을 방해하기도 한다는 것을 깨우쳐야 합니다.
자캐오에게는 그런 자의식이 없었습니다. 고위 세관장이었던 자캐오 같은 인물이 당시 한갓 떠돌이 설교자였던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에 올라가지 행위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점잖지 못한 일이었지요. 그러나 자캐오는 단지 예수님을 보고 싶다는 그 한 가지 소망 때문에 사회적인 평판이나 시선은 개의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습니다.
기도를 하는 데에 가장 기본적인 첫째 요건은 바로 자캐오가 지녔던 주님을 만나겠다는 강한 열망입니다. 오로지 주님을 향한 깊은 염원만이 우리를 기도하도록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열망이 없다면 지속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한 제가가 구루에게 청했습니다. “기도가 잘 안 되니 기도하는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스승은 제자를 데리고 강으로 갔습니다. 강물 속으로 들어가더니 갑자기 제자의 머리를 물 속에 밀어 넣었습니다. 잠시 후에 머리를 꺼내주었다가 다시 한번 물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가 꺼냈습니다. 겨우 헐떡이는 숨을 고른 제자는 어리둥절하면서 스승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스승이 말했습니다.
“기도하고 싶은 열망이 물 속에 머리를 처넣었을 때 숨쉬고 싶다는 일념과 같지 않다면 그대는 결코 기도의 진수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기도에 대한 갈망은 그 자체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이지만, 그 염원을 계속해서 간직하고 깊여나갈 때 우리는 자캐오처럼 우리의 집에서 함께 머물 수 있습니다. 기도에 어떤 유일한 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열망을 지니기만 한다면 자캐오처럼 그분을 만날 수 있는 길을 터득할 수 잇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문을 열고 기도하고자 하는 열망을 지닐 때 그분이 가만히 우리 안에 오셔서 함께 잔치를 벌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방문을 두드리시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함께 잔치를 열고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묵시 3,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