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대신부-
오늘 복음에는 간단하면서도 참으로 아름다운 가르침이 담겨있다. 물론 실천하기에 쉽지 않은 가르침이다. 오늘날 진수성찬(珍羞盛饌)의 연회를 준비해 놓고 길거리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같은 사람 등 면식(面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초대할 주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거의 모든 경우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잘 사는 이웃 사람들을 초대하여 음식을 나눌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초대받아 가서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끼리는 서로 즐거울지 모르나,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칭찬 받을 일이 될 수 없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가시적인 면과 비가시적인 면을 동시에 가진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그 속내가 더 중요하다.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정중한 "술과 식사의 초대"는 그 뒤에 감추어져 있는 "허기진 이해득실"을 동반한다. 이 경우 초대는 향응(饗應)이 된다. 투자한 만큼의 대가를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경우, 대인관계는 이러한 이해득실의 계산에 기초한다.
사람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아무런 계산도 없이,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도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 데 있을 것이다. 사랑이 바로 그렇다. 사랑은 계산을 할 줄 모르고 그저 베풀 줄만 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가진 것이 없어 갚을 수도 없는 그런 사람들을 당신의 식탁에 초대하신다. 바로 이런 하느님 사랑의 정신이 우리들의 사랑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나중에 하느님 나라에서 그만한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하늘 나라의 보상이 약속된 것은 확실하지만, 그 보상은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사랑을 실천한 의인(義人)에게 주어지는 보상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