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 식사시간 - 김희자 수녀님

2006. 11. 6. 오전 10: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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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간 월요일 2006/11/6


 독서 : 필리 2,1-4 복음 : 루카 14,12-14 


 
시끌벅적 식사시간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의 한 지도자)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루카 14,12-­14)
 
 
 ◆오늘 복음에 장애인, 가난한 이, 눈먼 이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초대받아 차별 없이 식탁에서 편하게 즐기는 모습을 상상한다. 예수님은 탕자와 소외당한 이, 스스로를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이들과 가난한 사람들, 장애인을 초대하여 손님으로 후대하는 분이시다.
식사는 우리가 한 식탁에 둘러앉아 자양분을 얻고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일상적인 축제다. 사랑을 담은 음식을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한국계 미국 프로 축구선수 하인스 워드의 어머니 김영희씨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아들을 위해 아침을 준비해 놓고 출근했다가 저녁 무렵에 돌아와 저녁상을 차려주고는 다시 야간 근무를 하러 갔다고 한다. 하인스 워드의 힘은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밥 힘’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무척 무뚝뚝하셨다. 다함께 하는 아침식사는 마치 예의범절 교육시간 같았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좋은 반찬이 있으면 늘 자식들에게 양보하셨다. 워낙 식구가 많다 보니 고깃국을 끓여도 고기는 몇 개밖에 돌아오지 않았으나 아버지의 국그릇에는 좀더 넉넉하게 넣어드리는 것이 우리집 예의였다. 아버지는 그것을 남김없이 건져 하나씩 우리들 그릇에 넣어주시면서 ‘나는 밖에서 많이 먹으니까’ 하셨다.
수녀원의 식사시간은 반나절, 또는 하루를 새로운 마음으로 보게 하는 영적이고 창조적인 자리다. 나이·취미·성격이 모두 다르지만 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신비스럽기도 하다. 공동체는 때로 희생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희생은 우리가 공동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특별히 침묵을 지키는 때가 아니면 우리 수녀원의 식사시간은 늘 시끌벅적하다. 이야기 소재는 자신이 읽은 책, 알고 있는 상식, 본가 방문 때 배우고 느낀 것, 새로운 소식 등 무궁무진하다.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는 날마다 재미나는 이야깃거리를 준비해 두었다가 오락시간이 되면 형제들을 웃겼다고 한다. 그는 천성적으로 유머 감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결코 주목의 대상이 될 만한 사람도 아니었지만 형제들을 사랑했던 까닭에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우리는 창조적인 잔치 방법을 익혀갈 의무가 있다. 소비자적 자세(사랑받고 용서받고 받아들여지는)가 아닌 공동체의 적극적 생산자로서 좀더 활기있고 신나는 노래와 이야기, 짤막한 소식을 알아내야겠다. 이런 것이 제대로 준비되면 식사를 비롯해 공동체의 삶과 나눔, 맡은 사명이 촉진되고 모두가 마음을 활짝 열게 된다.

김희자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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