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의 기본 정신 - 김웅태 신부님

2006. 11. 6. 오전 10:07:41

글자

연중 제 31주일 (나해)  
 

 

계명의 기본 정신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마르 12, 31)

 

오늘 말씀의 주제는 십계명의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입니다. 출애굽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십계명을 받고 서로의 사랑과 신의를 확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부를 때마다 항상 응답하여 주시는 분으로 인식하였으며, 또한 당신의 사랑 때문에 계약을 맺었으며,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무한한 사랑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과의 계약을 지킬 때에만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쉐마(들어라) 기도를 드리면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계명들을 숙지하며 유일하신 야훼 하느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신명기에 나오는 "이스라엘은 들어라"로 시작하는 율법의 기본정신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신으로 사랑의 정신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6장 5절의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희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는 말씀을 통해 이것을 가장 큰 계명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명을 지키라(요한 14, 15)고 명하십니다.

하느님께서 계명을 주신 것은 무한한 사랑 때문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도 절대적인 것이었기에 다른 신을 섬긴다거나 우상 숭배를 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계명은 계약으로 주어졌으며 그 계약만 충실히 지킨다면 영원히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웃사랑

 

하느님에 대한 사람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사랑과 함께 이웃 사랑에(레위 19, 18) 대해 언급하시면서 이 두 사랑이 모든 계명의 요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이웃 사랑을 통해서 표현되기 때문에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구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억눌린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야고보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즉 눈에 보이는 형제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브라함은 낯선 이웃인 나그네를 잘 대접함으로써 하느님께로부터 축복을 얻었는데 그는 천사였습니다.  이와 같이 이웃은 하느님의 천사이거나 바로 하느님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그런 것은 이방인들도 하고 있다는 성서의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매일 열심히 성당에 나가 기도하면서도 어떤 봉사 단체나 신심 단체에 가입하지 않는 신자를 어떤 마음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자기의 시간이 아까워서 활동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는 몇 푼의 돈을 내고 만족해 하는 신자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훨씬 낫다"(마르 12, 33)는 것뿐입니다.

자기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서는 매일미사를 봉헌하면서도 물건을 팔러 집에 오는 장사치나 도움을 받으러 오는 사람에게는 문도 열어 주지 않으며 냉정한 말로 거절하는 사람이 과연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있는 것일까요?  이런 자들은 이기주의자일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일지도 모릅니다.

하느님께서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는 오로지 사랑 때문이었으며 인간이 범죄한 후에도 계속해서 용서한 이유 역시 무한하신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끊임없는 반항과 배반을 보면서 계약을 맺어 축복을 약속하신 것도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끝내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통해 완전한 사랑을 보여 주심으로써 당신의 구원 사업을 완성시키셨습니다.  십자가의 어리석음은 곧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완전한 사랑입니다.  이것은 어떤 외침이나 이론이 아니라 억압과 가난에 시달리는 이웃에 대한 실질적인 봉사이며 나눔이고 나 자신을 희생하는 삶인 것입니다. (김웅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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