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요한”을 생활화 합시다. - 하성호 신부님

2006. 11. 6. 오전 10:03:41

글자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필리 1,1-11/ 루카 14,1-6)

우리 인간은 역사적 존재이기 때문에 역사의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보다 나은 문화를 언제나 만들어가려도 합니다. 이런 노력 덕택에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많은 나라에선 기아를 추방하였고, 각종 전염병을 퇴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제는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향락을 누리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돈도 많이 씁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순기능적인 효과가 있으면 역기능적인 결과도 있게 마련입니다. 의식주를 비롯한 제 문화를 개선하려는 인간의 노력의 역기능들도 많습니다. 도시화가 불러온 폐단들도 많고, 과소비적인 식생활이나 편리한 주거생활에서 생기는 환경오염과 대기오염은 아주 심각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환경 호르몬을 많이 걱정하기도 합니다. 삶의 질이 높아진 그만큼 자연 파괴와 화경오염은 심각해졌습니다.
여기서 우리 신앙인들의 삶의 자세를 반성해보아야 합니다. 그냥 이 시대의 한 사람으로 편리한 삶의 혜택을 누리며 갑남을녀처럼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깨어있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각성하여야 합니다. 그렇다고 거창한 얘기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 둘 차근차근 내 주위부터 정리를 해보자는 것입니다. 아주 쉽게 말해 나는 지금 주님이 원하는 생활을 얼마만큼 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평점을 매겨보는 일을 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나 자신 복음화 되기 위해선 물 한 방울 사용하는 것에서부터 주님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생활 습성을 필연적으로 길러야 합니다.
오늘 독서에 사도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는 것이고, 그 일을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이룩하셨습니다. 결국 우리가 의로움의 열매를 맺는 길은 그리스도처럼 나도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는 그 길을 선택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결국 나부터 복음화 되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언행에 있어 많이도 속화되어 있습니다.
세속적 이익이 아니라, 주님을 우선적으로 내 마음의 주님으로 모십시다. “예수 요한”을 생활화 합시다. 나를 복음화 시켜야 다른 사람을 복음화 시킵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는 필리피인들이 시종일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한 것을 칭찬합니다. 우리도 사도의 칭찬을 들읍시다. 나도 복음화 되고 내 이웃도 복음화 시키는 복음의 역군이 되겠다는 결심을 새로이 합시다. 죽음의 문화가 아니라 생명의 문화를 선택하고 육성하는데 앞장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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