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주여! 당신 종이 여기 대령했나이다
“그는 비록 나이는 젊으나 그의 성덕은 이를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다.”
1560년 교황 비오 4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22세의 가롤로 보로메오를 추기경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중요 인물이며, 가톨릭 교회의 개혁자이자 밀라노 교구의 대주교이며 추기경이었습니다.
가롤로 보로메오 성인은 1538년 이탈리아 북부 아로나 성에서 지베르토 백작과 교황 비오 4세의 여동생인 마르게리타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기도에 열중하며 그 중에서도 가톨릭 교회의 전례에 특별한 흥미를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1558년 그의 외삼촌이 교황에 선출되어 비오 4세라고 명명하게 되자 가롤로의 운명에 일대 변화가 생깁니다. 이듬해 교황 비오 4세에 의해 로마로 불려졌고, 22세 약관의 나이로 추기경에 임명된 것입니다. 추기경에 임명된 후부터 교황은 가롤로를 언제나 자기 곁에 두기를 원하였고, 가롤로는 교황의 여러 가지 지시들을 훌륭히 보좌하면서 든든한 보루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밀라노에서 학업을 계속하던 가롤로는 마침내 1559년에 민법과 교회법을 이수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합니다. 그는 비오 교황의 외교 사절로서 특별한 임무들을 수행하였으며 1562년에는 트리엔트 공의회 재소집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가롤로는 공의회 운영회의 훌륭한 지도자로서 임무를 수행하고, 마지막 회기에서 칙서들을 성문화하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그러던 중 교황은 그를 밀라노 대주교로 임명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로마에 있지 않으면 안 되었으므로 대리자를 파견하여 밀라노를 사목하게 하고 자신은 교황의 일을 돕는데 열과 성을 다합니다.
특히 트리엔트 공의회는 가톨릭 교리, 성경, 미사 전례서, 사제용 성무일도를 간행하고 교회의 행정 과 사제생활의 규정들을 결정하고 제정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는데 성인은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 사항이 준수되도록 노력하면서 수도원을 설립하고 교회 내의 개혁에 주력하였습니다.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어른이나 어린이에게 종교심을 깊게 새겨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공의회의 결정대로 성인은 로마 교리서의 편찬에 깊은 관여를 하였습니다. 교황 비오 4세는 1564년에 교리서 편찬 위원회를 구성하고 가롤로 추기경을 위원장으로 임명합니다. 이렇게 가톨릭 개혁을 위한 트리엔트 공의회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추기경은 밀라노 교구로 돌아와 교구의 개혁과 사목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11번의 교구 공의회와 6회의 관구 공의회를 열고 진행시킵니다.
이러한 가롤로 추기경의 노력으로 밀라노 교구는 점차 다른 교구의 모범으로 성숙한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물론 밀라노 교구 성직자와 신자의 모범이 된 것은 추기경 자신의 생활이었습니다. 그는 엄한 규칙 생활들을 영위하며 자신의 수입 전부를 교회나 빈민을 위해서 쓰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열심한 가롤로 추기경의 삶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성스러운 추기경으로 공경하며 사랑을 드리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 개혁의 대상이 되었던 자들에게 미움과 복수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추기경을 갖은 방법으로 괴롭혔고 급기야 그를 없애버리려고까지 했지요. 어느 날 가롤로 추기경이 기도에 몰두하고 있을 때 암살을 맡았던 한 괴한이 총을 발사하지만 총알이 몸을 스쳤을 뿐 아무런 해도 가하지 못해 추기경이 위기를 넘기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지속적인 개혁을 강행하던 시기에 대재앙이 다가옵니다. 1572년부터 이듬해 봄에 걸쳐 밀라노 시에 페스트가 창궐하게 된 것입니다. 피해는 말할 수 없이 컸지요. 사망자는 연속적으로 증가하였으며, 생존자들은 두려움에 떨다 다른 곳으로 피난 행렬을 이어갔습니다. 이러한 환난 중에도 가롤로 추기경은 용기를 잃지 않고 백성들에게 예방법을 가르치고, 빈궁자들에게 식량 배급을 하였으며 그들에게 고해성사를 주며 사망자를 매장하는 등 분골쇄신 활약을 합니다. 마침내 맹위를 휘두르던 전염병도 차츰 물러갔는데 이때 희생된 자가 만 칠천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 시민들은 추기경을 자신들의 구세주처럼 존경하고 감사하며 따랐습니다.
그러나 가롤로 추기경이 행한 과중한 업무와 노력은 그의 건강을 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엄격한 생활과 격심한 활동을 계속하던 그는 1584년 임종이 가까웠음을 알고 고요한 곳을 찾아 묵상을 하며 선종 준비를 합니다. 마침내 11월 4일 46세를 일기로 “주님, 제가 여기 대령하였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나게 됩니다. 그의 유해는 밀라노 주교좌 성당 제대 아래 안치되었고 1610년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가롤로 보로메오 성인은 사목자로서 교회의 쇄신을 위해 일생을 헌신했으며 맡겨진 양떼를 위해 최선을 다한 분이십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35-36)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했던 성인은 자기의 모든 직위와 재능을 복음적인 교회상 정립을 위해 노력하였고, 많은 반대자들의 저항과 시련에도 오직 하느님만을 믿고 의지했던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적인 일을 해도 어려움과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고 항상 선한 일에도 악한 일들이 가로막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상처받고 부딪히는 것이 바로 비복음적인 사람과의 충돌에서 오는 좌절감입니다.
예수님도 그러하셨고 가롤로 보로메오 추기경도 그 길을 따랐듯이 시련은 성숙의 시기요 은총의 시기였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