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1주일(나해) :신명6,2-6;히브7,23-28;마르12,ㄱㄷ-34
=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묵상길잡이: 어떤 사람과 깊은 친교를 나누려면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과 친해져야 한다. 그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그분을 이해하고 그분을 닮아가야 한다. 하느님과 깊은 우정을, 사랑을 나누는 것이 구원이다. 그러기 위해서 사랑이신 주님을 닮아야 한다.
1. 어디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까?
우리는 가끔 하느님을 믿으라고 하면 “하느님이 정말 있기는 있나?”하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하느님을 보여주면 믿겠다는 말이다. 하느님을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하느님을 느끼고 체험할 수는 있다. 어디서 하느님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가?
사도 요한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한 1서 4,8)고 하셨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이신 하느님은 서로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는(상호수여:相互授與)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시는 사랑의 하느님이 십니다. 셋이 사랑의 일치로 하나가 되는 분이 하느님이 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상의 삶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는 사랑을 체험하면 사랑이신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이다. 신앙 안에 서로 위해주고 서로를 아껴주는 “성가정(聖家庭)은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삼위일체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부부간에, 부모 자식 간에, 형제간에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는 진한 사랑의 흐름이 있는 가정은, 참으로 하느님의 생명이 숨 쉬는 가정인 것이다. 그런 서로를 위하는 사랑을 체험하는 그 가정의 식구들은 참으로 하느님의 생명을, 구원을 체험할 것이다. 살맛이 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삼위일체이신 사랑의 하느님을 사는 데서 하느님을 체험하고 느낄 수 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2. 사랑의 계명이 왜 가장 큰 계명인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이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이들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계명인가? 첫째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12,30)고 가르쳐 주신다. 이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사랑의 이중계명(二重誡命)이다.
왜 이 계명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구원이란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것이다. 구원이란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그 가지이다.”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나무와 가지처럼 어떻게 그분과 하나가 될 수 있는가? 참기름 병에 물을 넣고 아무리 잘 흔들어도 물과 기름은 완전히 섞이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을 위해 배려하고 참고 희생하는 사랑이 없이는,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없다. 성부 성자 성령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그런 사랑을 할 때만이 하느님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가장 완전한 행복을 체험하는 것이라고도 말 할 수 있다. 참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사랑하지 않고, 사랑받지 않고 행복해지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을 체험하지 않으면 살수가 없는 존재이다. 사랑의 계명을 사는데 참 행복이 있다.
3. 나 아닌 누군가를 참으로 사랑해보는 체험이 인생의 가장 큰 숙제이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으로 태어난 존엄성은, 하느님의 참 생명, 진정한 행복, 구원에 초대되었다는 데 있다. 하느님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은 결코 서로 다fms 두 가지가 아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없는 인간에 대한 사랑은 000 때문에 사랑하는 꼬리표 달린 조건부 사랑이나, 자기 과시적인 사랑에로 흐르기 십상이다. 그런가 하면,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광신(狂信)에로 흐르기 마련이다.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만이 본능적인 사랑이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하는 참 사랑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죽기 전에 꼭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면, 그것은 “나 아닌 누군가를 나 전부를 바쳐 진정으로 사랑해보는 체험이다”. 그래야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이 있는 것이 아닐까? 나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을 위해서도 나를 바쳐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를 체험할 것이다. 부부의 관계나 부모 자식, 형제자매의 천륜이나, 우리의 이웃들은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하느님을 만나도록 우리에게 주신 귀한 인연임을 깨닫자.
영광송을 바칠 때마다, 성호를 그을 때마다, 성부 성자 성령 사랑으로 하나 되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살도록 다짐하며 은총을 구하자.
[마산]연중 제31주일206.11.5.하느님은 사랑이시다 - 유영봉 신부님
2006. 11. 6. 오전 9: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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