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운전하고 계신 분들 있으시죠? 도로에 나가면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입니까?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입니까? 아니면 성가신 오토바이입니까? 아니면 대책 없는 자전거입니까? 그러나 이런 것 외에 정작 무서워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통 단속입니다. 어느샌가 나타나는 교통 경찰과 언제 찍혔는지도 모르는 채 받게 되는 범칙금 납부 고지서입니다.
그래서 교통신호는 안 살피고, 경찰과 카메라만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규정 속도 지키고, 신호 위반 안 하면 단속에 걸릴 일도 없다는 것은 알지만, 세상에 규정만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항상 지키기에는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내리막길 자칫하면 규정 속도 넘기게 됩니다. 그렇다고 속도를 줄이면 뒤차와 접촉사고 납니다. 알면서도 달리고 있는데 앞에 교묘히 설치된 이동식 카메라가 보입니다. 그 순간 앗차 함정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고속도로 휴게소 출구에 설치된 카메라도 있습니다. 규정 속도로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인데도 단속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사고가 예방되는지 정말 사고 다발 지역에서의 예방 차원의 단속인지, 실적 올리기인지 모호할 때가 있습니다. 심하면 카메라가 예방이 아니라 사고 유발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다지 카메라를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내가 보호받는다는 생각보다 감시당한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자연히 거부감을 가지게 하고, 교통 안전보다 성가시다는 생각을 들게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안식일법’ 규정을 들먹이는 바리사이들에게 너희들 너무 한다고 항변하십니다. 이 모습은 거의 교통 경찰에게 항변하는 운전자와 같습니다.
일단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안식일 위반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규정속도 준수가 운전의 기본 중의 기본인 것처럼, 안식일은 쉬는 날이므로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것은 말이 필요 없는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다만 정속 유지가 사고 예방에는 도움이 되지만, 눈 앞의 사고를 보면서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고지식하게 규정을 따지는 운전자는 몇이나 되겠습니까?
안식일에 노동하지 말라는 규정으로 피할 수 있는 사고를 그냥 지켜 보고 있어야 한다는,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손길까지 거두어야 한다는 것은 억지가 아닐까요?
안식일의 치유, 규정대로 하면 위반이 맞습니다. 그러나 왠지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형평성 없는 법적용이 법과 규정의 취지를 흐리게 하듯, 자비 없는 계명은 하느님의 뜻을 멀어지게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가는 하느님의 마음에서 예수님은 화가 나신 것입니다.
안식일이 하느님을 위한 감사의 날이라면, 그래서 쉬는 날이라면, 이 거룩한 날, 왜 남의 꽁무니나 쫓으며 흠집이나 잡냐고 항의하신 것입니다. 만약 우리도 내가 그 사람보다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 사람 흠집이나 잡으려 한다면,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질타를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는 열심과 봉사는, 다른 사람을 못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특히 그렇게 못하는 이들에 대한 비난이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나는 타인을 향한 감시 카메라가 되어선 안됩니다. 부디 배려하는 마음으로 함께 갈 수 있도록 하십시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