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밖으로

2006. 11. 6. 오전 9:55:45

글자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2006.11.4.

 

요한 복음 10장 11-16절(선택)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이 나를 안다.”
 우리 밖으로     장재봉 신부
아무리 좋은 목자라도 양을 우리 안에만 가두어 보호할 수는 없습니다. 날이
밝으면 울 밖으로 나가서 꼴을 먹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아침마다 목자는
자기가 잘 알고 있는 풀밭으로, 눈여겨보았던 잔잔한 냇가로 양들을 몰아갈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울’ 혹은 ‘틀’ 안에 안주하려는 우리들을 향해 “세상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교회 안에서만 지내면,
신자들끼리 마음이 통하고 생각도 비슷해서 매양 즐겁지만, 우리는 오늘도
착한 목자 예수님을 따라 ‘울’ 밖으로, ‘우리’ 밖으로 세상을 향해 나서야 합니다.
바깥세상에는 늑대의 위험도 있고, 위험한 낭떠러지를 지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늑대가 무섭다고 양을 우리 안에만 가두어 키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이기에, 양이 위험한 곳을
향할 때에는 지팡이로 ‘톡톡’ 건드려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알려주기도 합니다.
“막대기와 지팡이로”(시편 23,4)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그 경고의 막대기가
나에게 아픔일 수도 있고, “왜 때려요?” 하고 되묻고 싶은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힘을 주고 바른 길을 알려주시는 그분의 손길입니다.
착한 목자 예수님께서 앞장서서 이끌어주시는 그 길을 따라가노라면 때론 눈비를
맞거나 장애물에 넘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끝에는 꼭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알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를 그분께서는 착한 양떼라고 부르십니다.
 나의 달란트
오늘 환자방문을 다녀왔다. 그분은 6년 전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쓰지 못해
휠체어를 타고 남편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환자를 보면
나와는 거리가 먼 일처럼 생각을 하지만 그분도 6년 전에는 건강한 분이었다.
누구에게나 닥쳐올 일인데 나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런 그분을 오래 전부터
한번 방문을 해보아야지 하면서 갖가지 핑계를 대며 미뤄왔는데 오늘은
용기를 내었다. 환자방문은 나에게 너무도 힘든 일이다. 오래 전 우리 집에
오랫동안 병상을 지키던 가족이 있어 온가족이 힘든 시기가 있어서인지
환자방문은 선뜻 나서지질 않았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가는 곳곳마다 걸음걸이를
재어 백 배 천 배 갚으신다는 그 말을 나는 아니고 다른 이에게만 해당되는 듯
나는 다른 사람들한테 늘 말해왔다. 그러면서 내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가는 곳은
생색이 나고 즐거운 곳, 즉 꾸르실료, 성령세미나, 성경공부, 성지순례, 피정 등….
그런데 그분이 나를 보더니 “얼굴이 너무도 편안해요!” 하신다. 나는 내게
무슨 달란트가 있는지 몰랐다. 항상 가진 것을 나누십시오 하면 나는 가진 것이
없으니 나눌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나누고 싶지 않아 내가 무었을 가졌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받은 달란트는 평화였고 내가 나누어야할
상대는 그리도 두려운 환자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언을 기억하며,
나도 나병환자를 보아도 역겹지 않은 회개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해본다.
내 힘으로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리고 그 환자를 돌보는 남편을
축복해주십사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김 아델라 | 미국 로스앤젤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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