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 / 사울,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다 - 이기양 신부님

2007. 1. 25. 오전 8:47:23

글자

<1월 25일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            
                           사울,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다

 

제 1독서 : 사도 22,3-16 (일어나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복    음 : 마르 16,15-18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는데 혹시 못 보셨는지요? 흔히 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해가 서쪽에서 떴다고 이야기하지요. 오늘은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입니다. 교회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난 사건을 근거로 1월 25일을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열렬한 유대교 신자였던 ‘사울’이라는 사람이 자기가 몸담고 있는 유대교에서 못박아 죽인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 후 세례를 받고 “예수는 주님”이라고 선포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사울 본인으로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사울의 회개는 세계사를 바꾼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의미심장한 사건이지요.

   초창기 그리스도교의 두 기둥을 뽑으라고 한다면 누구나 망설임 없이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를 뽑을 것입니다. 특히 바오로 사도는 27권의 신약성경 중에 약 13(4)권이나 되는 책을 집필한 저자이기도 하지요. 그 성경은 테살로니카 전·후서, 코린토 전·후서, 갈라티아서, 로마서, 필리피서, 필레몬서, 콜로새서, 에페소서, 티모테오 전·후서, 티토서, 히브리서입니다. 그 중에서도 초대 교회를 전 세계로 확장한 일등 공신은 바오로 사도입니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바오로 사도를 두고 “그리스도교의 발명가”라고 까지 부를 정도였으니 바오로 사도를 초대 교회의 근간을 이룩한 사도라고 보아도 틀림은 없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름은 그래서 두 개입니다. 일반적으로 유다교 신자였던 때 ‘사울’로 불렸고 회심하여 그리스도교 공동체로 들어와서는 ‘바오로’로 불리었지요.

   역사를 바꾼 바오로 사도의 회심 이야기가 오늘 독서의 내용입니다. 이 사건은 사도행전 9장, 22장, 26장에 되풀이되어 묘사되고 있습니다. 같은 성경에 세 번씩이나 반복되어 다루어진 것을 보면 이 일이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를 알 수가 있지요. 바오로 사도는 너무나 열렬한 유다교 신자였기 때문에 유다교를 거부하는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스테파노가 죽을 때에도 옆에서 찬동을 하였고, 스테파노의 죽음 이후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안티오키아 쪽으로 도망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잡으러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에 대한 그의 박해는 유명하여 심지어는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쿠스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오로의 회심을 옆에서 도왔던 하나니아스라는 사람까지도 바오로의 악명을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주님,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사도9,13)
   사울을 찾아가라는 주님의 요청에 하나니아스가 한 대답입니다. 그 곳까지 소문이 자자했던 것이지요. 바오로는 그리스도인들이 다마스쿠스에 모여 있다는 말을 듣고 대사제들과 원로들로부터 아주 특별한 위임장을 받고 혈기왕성하게 그들을 잡으러 갑니다. 의기양양하게 길을 가고 있는 바오로에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환히 비추었습니다. 그러자 바오로는 너무 놀라서 땅에 엎드러지고 말지요. 그때 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도9,4)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사도9,5)
   깜짝 놀란 바오로가 묻자 그 음성이 대답합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사도9,5)
   이 순간 사울은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되어버립니다. 단 한번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유다인으로서의 사울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 바오로로 탄생이 되지요. 다마스쿠스에 도착한 바오로는 예루살렘을 떠날 때의 혈기왕성한 유다인 사울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너무나도 놀라서 모든 것을 뉘우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며 그리스도교를 전 세계로 선포하는 그리스도의 사도로 변화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회심이 이루어지고 나서 바오로 사도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주님을 증언하게 됩니다.
   사울의 변화는 그의 판단력이나 의지에서가 아니라 오로지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뽑은 이유가 오늘 독서에 나와 있지요. 주님께서 하나니아스에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사도9,15-16)
   스테파노를 돌로 쳐 죽이는 데에 가담하고 그리스도 신자들을 박해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출발할 때부터 벌써 주님은 바오로 사도를 당신의 일꾼으로 뽑아 놓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충격으로 땅에 엎드려졌던 사울은 즉시 기력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사흘 동안이나 앞을 못 보고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못했지요. 마치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사흘 밤낮을 돌무덤에 묻히셨다가 부활하신 것 같은 과정을 겪습니다. 그 후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만나면서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사도9,18) 되지요. 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세례를 받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를 전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사울이 주님께로부터 큰 은총을 받는 장면을 보고 우리는 이제 그가 당장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큰 일을 하고 승승장구하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크신 은총을 받았고 예수님께서 직접 불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공동체는 바오로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뛰어난 선교사 스테파노를 죽이는 데 찬동하고 조직적으로 자신들을 박해하는데 힘을 쏟던 유다의  열혈 청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사면초가에 빠진 바오로사도는 45년경 1차 전도여행을 하기까지 많은 시련과 실패를 체험하면서 성과없는 11년을 보내고 고향 타르수스에서 은둔생활을 하기까지 합니다. 실의에 빠져 고향에 머무르고 있는 바오로를 예루살렘에서 안티오키아 교회를 돌보기 위해 파견된 바르나바가 사목자로 부릅니다. 그때서야 하느님의 사람으로 쓰기 위해 부르셨지요.
   하느님의 뜻과 사람의 생각은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때가 있는 법입니다. 사울의 사람됨과 그 행위를 낱낱이 아시고 그를 바오로로 변화시킨 후에도 주님은 기다리셨습니다. 묵묵히 지켜보시지요.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하느님의 뜻이 얼마나 다른 지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바오로가 회심하자마자 자신의 경험과 의지만을 믿고 마구 행동했다면 분명히 얼마 안 가서 실패자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자기의 의지만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걸려 넘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주님께서는 바오로가 힘이 빠져 성령 안에 자신을 도구로 내어 맡길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구약의 대표적인 인물인 모세 또한 혈기 왕성하게 자기 민족을 박해하는 이집트 사람을 쳐죽이지만 그의 의거는 실패로 돌아가지요. 미디안 광야로 도망간 모세는 사십 년 동안을 양치기로 보내야 했습니다. 힘이 다 빠진 모세가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낼 수 있겠습니까?”(탈출3,11)할 때 비로소 하느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탈출3,12)하고 끌어내시지요. 바오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의지나 지식만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도구로 내어 맡길 때 풍요로운 결실을 맺게 되지요. 또 자신을 성령의 도구로 내어 맡긴다고 해서 시련이나 고난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에게도, 부활을 체험한 열 한 사도에게도, 또 갑작스럽게 회심한 사도 바오로에게도 분명하게 주어진 소명과 고난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뜻, 복음을 전하는 길은 험난하지만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화를 주는 길이지요. 복음을 전함으로써 누구보다도 강하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던 바오로 사도는 주님을 전하는 일을 사도의 권리라고 말합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1코린9,23)
   이 복음 선포의 사명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대와 역사를 초월하여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주어진 첫 번째 사명입니다. 이 곳에 성당에 세워진 이유도 바로 그것이지요. 이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하느님께 미사를 드리며 감사와 찬미로써 모든 봉헌을 마치고 파견될 때마다 사제는 신자들에게 촉구합니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또 다시 복음 선포의 사명을 일깨워주는 것이지요. 복음 선포가 바로 교회의 첫 번째 사명이고 그것이 가장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들, 그리고 하느님의 부활의 체험을 더 깊이 성장시키는 방법은 복음 선포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고 우리 공동체가 복음적인 공동체로 거듭 성장하려면 복음 선포의 사도로서 내 자신을 성령의 도구로 내여 놓아야 합니다. 그 때 개인의 부활 체험은 더욱 깊어져 성화 되고 공동체는 복음적인 공동체로 한 걸음 더 성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사도9,15)
   오늘 주님께서 하나니아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을 지내는 우리에게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같은 사명을 주셨습니다. 복음 선포의 사명을 실천할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더욱 깊이 체험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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