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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4일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 학자 기념일>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듯이 16세기 경 루터, 쯔빙글리, 칼빈 등이 종교 분열을 일으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구라파 각지를 혼란의 도가니로 빠뜨릴 당시 하느님께서는 성교회를 보호할 세 명의 성인을 보내주십니다. 독일의 성 베드로 가니시오, 이탈리아의 성 가롤로 보로메오, 그리고 프랑스의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이 바로 그 성인들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성 프란치스꼬 드 살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이 낯선 분으로 느껴지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이 분이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님이라면 많은 분들이 의아해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돈 보스코 성인께서는 살레시오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공경하였고 주보 성인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살레시안’이라고 불렀으며 수도회 인장에 살레시오 성인 모습을 새겨 넣기도 하였습니다. 돈 보스코는 살레시오 성인의 구원을 위한 열정적인 진리 추구와 가톨릭 교회를 수호하려는 충성심에 감복하였으며, 살레시오 성인의 인내와 친절, 온유함에 매력을 느꼈다고 합니다. 프란치스꼬 드 살 성인은 1567년 8월 21일 프랑스 사비아 지방의 살레시오성에서 후작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성장한 프란치스코는 파리의 아네시와 클레르몽 예수회 대학에서 공부하였고, 파도바 대학에서는 법률과 신학을 전공하여 24세의 약관의 나이에 법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이와 같은 그의 놀라운 사도적 활동이 세상에 널리 퍼지지 않을 수 없었지요. 오래지 않아 그의 이름은 프랑스 국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국왕은 파리나 리용의 대도시에 아직 남아 있는 칼빈파 이단을 전멸하기 위해 프란치스코를 초빙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도시에서 강론과 기타 모든 방법으로 많은 성과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덕이 높고 학식이 많은 성인에게 영적 지도를 청하는 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여서 그들에게 일일이 대답해 주기에는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유명한 저작 『필로테아』라는 신심생활의 입문서도 그의 지도를 바라는 사람들의 간청으로 저술한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20년 간 주교직에 있으면서 모든 이에게 성덕의 감화를 주었습니다. 특히 성인은 제네바에 있는 600여 개 교회 신자들에게 신앙심을 북돋아 주었으며 교리를 모르는 사람들을 성심껏 지도하여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계속해서 성무와 영혼의 지도에 전력한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은 과로하게 되어 55세인 1622년 12월 28일, 리용의 병석에 눕게 되어 모인 사람들의 기도 속에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인은 그 후 1655년에 시성이 되었고 1877년에는 교회 박사로 선언되었으며, 1923년에는 가톨릭 언론의 수호 성인으로 공경 받게 되었습니다. ‘신심 생활 입문’(1606), ‘신애론’(1616) 등이 그가 남긴 유명한 저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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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4일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 학자 기념일> 훌륭한 사목자요 교육자, 설교자였던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 학자-이기양 신부님
2007. 1. 24. 오후 3: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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