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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연중 제 30 주간 화요일. 2006. 10. 31. 중계본동. 에페 5, 21-33. 루카 13, 18-21. 광고를 보면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카피가 나오는데 제가 좋아하는 카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으면서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 37)고 고백합니다. 그 하느님의 가능성은 믿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해지게 되어 우리 역시 불가능한 것이 없음을 고백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 믿음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해도 될 것이다”(마르 23)라고 하셨죠.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를 보면, 선생님이 우리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행동을 찾아서 일년내내 하자는 숙제를 내자 다들 그건 너무 어렵고, 짜증나고 어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투덜댑니다. 어느 하나 긍정적인 생각을 말하지 않을 때, 선생님이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말씀하시죠? 다들 왜 이러느냐고, 그렇게 말하지 말고 “가능하다”라고 말해보자 하죠. 그리고 아이들을 ‘도움주기 릴레이’ 의견을 내고, 그 도움주기가 한 사람이 세 사람에게 그리고 그 세 사람은 다시 각각 세 사람에게 도움을 주게 되고, 그것이 이 세상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게 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그것이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그 해답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해보지 않고 그것이 되겠냐고 먼저 판단을 내린 후 행동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사랑하는 것만큼은 할 수 있다고 여겨야 합니다.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믿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사랑의 세상, 여기에서의 하늘나라입니다. 다들 그 예수 한 사람의 운동이 세상을 뭐 어쩌겠느냐고 했지만, 그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 사랑 운동은 12의 제자들을 통해, 그리고 많은 제자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통해 전해졌고, 세상에서 그 예수 이름으로 사랑의 행위들은 번져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나라가 겨자씨와 같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하늘나라를 우리 주변으로 내리시어 비유로 말씀하시는데, 겨자씨와 같다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것이지만, 정원에 뿌려졌다면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깃듭니다. 즉 이 하늘나라인 겨자씨가 이 세상에 아니 바로 내 안에 뿌려졌다면 그 겨자씨는 이미 자랄 생명과 운명이 정해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의 복음이 뿌려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씨앗은 이미 자라날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되겠어?’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이미 처음의 그 존재가 아니라 크게 자라날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나는 그 가능성을 키워야 합니다. ‘내 믿음이 이것밖에 안 돼’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난 크게 자랄 씨앗을 품고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나는 그렇게 자랄 수 있는 존재들이고, 지친 새들과 같은 그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 나의 사랑에 기대어 쉴 수 있게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에게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세례를 받으며 하느님나라가 뿌려졌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누구든 내게 와서 쉴 수 있도록 예수의 말씀으로 키워야 합니다. 나는 할 수 있습니다. 아멘. |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 조성호 신부님
2006. 11. 2. 오전 11: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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