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희망 ‘행복선언’ - 장재봉 신부님

2006. 11. 2. 오전 11:00:27

글자

모든 성인 대축일 2006.11.1 수요일

 

마태오 복음 5장 1-12ㄱ절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우리의 희망 ‘행복선언’     장재봉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
그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군중들은 과연 그 말씀을 그대로 살았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가난한 사람들의 기쁨은 찌들린 일상으로
희석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부자들 또한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자신이 살아오던 방식대로 떵떵거리며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 삶에 큰 변화가
생기지 않을 것을 알고 계셨을 예수님께서 굳이 이러한 선포를 하신 까닭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오늘은 모든 성인의 축일입니다. 우리들은 무수한
성인들이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아서 성인이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그분들이 살아내신 가난 희생 고통을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행복선언은 내 안에서 하느님이 차지하시는
비율입니다. 가진 것이 적은 사람은 그만큼 하느님의 자리가 넓을 것이고,
자신의 것으로 꽉 찬 사람은 하느님께 내드릴 자리가 좁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마음이 가난하고 슬프고 온유해야 하며, 자비로운데다가
마음까지 깨끗하여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될 때에만 하느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내 것을 사랑으로 나누는 마음이 있다면, 이웃의 아픔에 연민을
가진다면, 주어진 삶에서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순명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틀림없는 그분의 자녀라는 기쁜 소식입니다. 위령성월의 첫 날에
이 특별한 축복으로 우리에게 힘을 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와 함께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되기를 꿈꾸십니다.
 택배
“택배 왔습니다.” ‘누굴까? 택배 보낼 사람이 없는데…’ 현관문을 열고
받아본 택배 주소를 보니 부모님에게서 온 것이었다. 굵직한 마늘을
깨끗하게 손질해서 제일 좋은 것으로 보내신 것이다. 택배를 보니 작년 이맘 때가
생각난다. 일은 못하지만 조금이나마 부모님 일손을 도와드리려고 추수 때에 맞춰
휴가를 갔다. 그때 아버지는 친척들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선물을 보내신다고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셨다. 방앗간에 가서 찧어온 햅쌀과 찹쌀, 그 전날 따온
싱싱한 고추와 고춧가루, 깨끗이 손질한 마늘 등을 상자에 담아 무게를 달고
포장을 한 뒤 상자마다 주소를 쓰셨다. 아버지가 하루 종일 정성껏 쌓아 놓은
택배상자는 20개가 넘었다. 고생하는 부모님 때문에 괜히 속상한 마음도 들었고,
택배비가 만만치 않은 것 같아 “아버지 택배비는 받는 사람이 각자 내라고 하면
안 돼요? 친척들이 뭐 해준 것 있다고 해마다 공짜로 보내요. 택배비도 많이
드는 것 같구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아니에요” 하고 농담을 했더니 아버지는
웃으시며, “우리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많아. 받는 것이 많은데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이라도 줘야지.” 옆에서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어머니도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 하셨다. 농담이긴 했지만, 내 마음속엔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두 분은 마음으로 나누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주는 것보다 받은 것만 생각난다던 아버지 말씀이 나를 참 부끄럽게 했다.
주는 만큼 받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겠지. 그러나 나누면서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그 마음, 손해 보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더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마음, 이런 마음이 진정으로 나눌 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이 든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창고 한쪽에서 이것저것 택배상자를 포장하고 계신 두 분의
모습이 선하다.
김연화 | 광주시 남구 임암동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강론 묵상 모음집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