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 30 주간 월요일.
2006. 10. 30.
중계본동.
에페 4, 32-5, 8.
루카 13, 10-17.
여러분 사람이 존중받아야 합니까? 동물이 존중받아야 합니까? 아니 질문을 고치겠습니다. 사람이 우선입니까? 동물이 우선입니까? 요즘이야 사람보다 더 대우받는 동물들이 있어 이 질문이 무색하게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사람이 바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여기 동물보다 더 대우받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무려 18(이 숫자는 종종 큰 숫자로서 쓰이게 된다)년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던 여인. 예수께서는 이 여인을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난리입니다. 안식일에는 안 된답니다. 사람을 고쳐주고서도 욕먹다니. 우리는 그렇게 욕하는 사람들을 향해 다시 욕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지금의 세상에서도 그런 일은 벌어지고, 나 역시 은근히 그것에 동참할 때도 있습니다. 대우받아야 할 사람이 대우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침묵하거나, 옳게 분배되어야 함에도 나만의-나의 가족들만의-나와 관계된 사람들만의 행복을 위해 살고 있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그에게 관심조차 없던 이들이, 오히려 그의 병을 보면서 그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거나 사탄에 사로잡혔다거나 그렇게 변두리로 밀어내던 이들이 그가 고침을 받자 다시 그를 공격합니다. 왜 하필이면 그때 고쳤느냐고. ‘니들이 그 고통을 당해봤니?’ 단번에 그 소리가 목구멍을 돌지만, 사실 교회의 이름으로 그렇게 외적인 것을 들고서 사람들을 매어두었던 적이 있으니 저 역시 자유롭지 못한 인간입니다.
예수께서는 다시 외치는 듯합니다.
‘사람이 중요하다’
‘사랑이 중요하다’
‘누군가 묶여 있다면 그를 풀어주는 것이 당연하다’
‘행하기 전에 사랑하려하고, 사랑한 후에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그것만 생각하라’
굶주린, 목마른 짐승이라면 안식일이라도 묶인 것을 풀어 물을 먹이거늘, 하물며 18년 동안이나 묶인 사람을, 너무나 사랑에 굶주린 사람을, 사랑에 목마른 사람을 풀어주는 것이 무엇이 잘못입니까? 그가 동물보다 못하다는 말입니까? 예수께서는 묻습니다. 과연 너희들이 하느님의 법인 양 정해놓은 그것이 과연 사람을 향한 사랑이냐고!
예수께서는 이 여인을 묶어 둔 이가 사탄이라고 말씀하시면서(루카 13, 16) 지금 이 여인을 치유한 것을 욕하는 이들의 행동이 바로 사탄의 행동임을 말씀하십니다. 누구라도 사랑에 대해 비난하는 자가 있거든, 사람을 위한 행동에 돌을 던지는 자가 있거든, 그는 사탄과 같은 존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사랑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