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이 곳으로 이사 온 뒤에 지난 번 살던 집의 값이 올랐습니다.”
“저는 주님이 재물 복은 주시지 안나바요. 속이 상해요.”
세례를 준비하면서 어느 교우가 저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이사 온 뒤에 집값이 껑충 뛰었으니 얼마나 아쉬웠겠습니까? 부동산이 자신의 부를 늘리는 수단으로 자리 잡은 지도 꽤 되었으니 그럴 법도 합니다.
“아마 여러 모습으로 사랑하시는 주님은 다른 것으로 풍요롭게 하실 것입니다.”
“이사 오셔서 세례성사로 새롭게 태어나셨으니 그 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교우의 아쉬움을 들으면서 특별히 드릴 답은 없었지만 주님께서 답을 만들어 주십니다.
“신부님 맞습니다. 제가 어리석었나 봐요. 죽으면 다 놓고 갈 것에 마음을 두었으니 평화로울 수 없었지요. 이제 그 보다 더 큰 영원한 가치를 알게 해주셨으니 감사 할 뿐입니다.”
이제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대림절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거룩한 탄생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탄생은 바로 나와 연관이 있을 때 그 의미를 더할 수 있습니다. 세례성사로 새롭게 태어난 신앙인은 바로 주님의 거룩한 탄생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초대 받은 사람입니다.
신앙의 여정은 거룩한 탄생의 연속이어야 합니다. 주님의 거룩한 탄생이 나의 신앙 여정 안에 이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까? 그 답은 주님은 이렇게 주십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루카21,28)
‘머리를 들어라.’하신 말씀이 주님의 거룩한 탄생을 준비하는 대림절에 화두로 다가옵니다. 거룩한 탄생이 내 안에 이루지기 위해서 시선을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가치 두어야 합니다. 한계가 있는 세속적인 가치에 시선을 두면 주님의 탄생에 비롯되는 평화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밑바탕에는 우리를 속량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사랑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선을 때지 않듯이.. 이어서 주님을 깨어 기도할 것을 당부하십니다.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21,36)
깨어 있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 앞에 게으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게으르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마음의 움직임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 바로 깨어 기도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의 마음이 세속적인 관심사에 물러지겠지요. 그를 위해 주님이 바로 나를 사랑하셔서 동반자가 되어 오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루카21,34)
[묵상] 속이상해요. [ 까만사제 ]/2006.12.19
2006. 12. 19. 오전 9: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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