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대림 제 3 주간 월요일.
2006. 12. 18.
토평동.
예레 23, 5-8.
마태 1, 18-24.
믿음이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은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던져보았을 질문이고, 어쩌면 살아가는 동안 계속 던지게 될 질문이 아닐까 합니다. 믿음은 그야말로 믿음입니다. 나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를 맺는 대상이 있는 것이고, 그 대상에게 신뢰를 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하느님을 향한 것이 되면, 내가 애쓰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분께 내어맡기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즉 믿음이란 더 많은 믿음을 가져보겠다고 내 힘으로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신실하심에 전적으로 내어맡기는 데서 강해진다는 것이죠.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십니다.”(2티모 2, 13)
사도 바오로가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주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약속을 저버리실 리가 없습니다. 어떠한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이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요셉. 의로운 그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맡깁니다. 처음 약혼자였던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가 가진 마음은 의로운 것이었습니다. 같이 살지 않았는데도 아이를 가졌다면 그것은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일이 아니었기에(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이의 행동이 아니었기에) 그는 파혼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면박을 줄 생각이 없었기에 착한 요셉은 최대한 그녀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행동합니다. 참으로의롭고도 착합니다.
그런데 천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했음을 알려줍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답게(누가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느님을 믿는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나도 알고 모두 아는 것 아닌가?) 인간적인 자신의 뜻을 접고 따르기로 합니다. 주 하느님을 향한 믿음 속에 사도 바오로가 말한 것과 같은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성실하신 분이시고, 자신에게 해 오신 것처럼 앞으로의 삶에서도 당신의 말씀에 대해 약속을 지키실 것이고, 지금 하시는 말씀도 그 신실함 속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삶으로 실천하며 아는 것은 하나여야 합니다.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마태 1, 23)는 사실을 머리로 알면서도 실제 삶에서 함께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니고 믿음도 아닙니다. 요셉은 그것을 알고 있었고 삶으로 믿음을 보여준 것이죠.
하느님께서 늘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아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그 삶을 사는 이는 복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