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내 멍에는...[이회진 신부님]

2006. 12. 13. 오후 1:14:11

글자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이회진신부-

오늘 복음 말씀은 때로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분명 예수님은 우리에게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라”고 하시며,

당신에게 다가가는 사람에게는 “안식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성당을 찾고 있고,

성당에 들어서서 성체 앞에 앉아 기도를 드릴 때 “평화와 안식”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 “평화와 안식”이 영속적이지도 않을뿐더러

단 하루도 지속시키기가 힘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체 앞에서 돌아서면 다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떤 이들은 신앙이 “평화와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인 위안”을 주는 마약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편리에 따라 하느님의 말씀의 일부만 듣기 때문이죠.

예수님은 당신께서 주시는 안식을 얻기 위해서는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비로소 “안식을 얻을 것이라.”는 것이죠.


준주성범 11장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름에 대해 이야기하며

“예수님을 사랑하며 따르는 이들 중에 천국을 원하는 사람은 많으나

십자가를 따르는 이들이 적고,

위안을 받고 싶은 이들은 많으나 고난을 받고자 하는 이는 적다.

또한 누구나 다 예수님과 더불어 즐기려 하지만,

그분을 위해 고통을 참겠다는 이는 적다”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어려움을 겪지 않을 때만 사랑한다는 것이죠.


평화와 안식을 얻고 싶은데 예수님의 멍에는 배우고 싶지 않고,

지고 싶지 않은 것이 우리네 마음입니다.

흔히 이 멍에를 우리는 십자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멍에는 우리를 고생시키려는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 견디기 어려운 짐도 아닌 주님께서 주시는 멍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버겁고 무거운 이 삶의 멍에들을

어떻게 하면 가벼운 주님의 멍에로 바꿀 수 있을까요?


그것은 주님처럼 멍에를 메고 가는 것입니다.

주님처럼 삶의 멍에를 메고 간다는 것은 당신 자신에게 맡겨진 멍에를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받아 안고 간다는 것을 의미하죠.

다시 말해 당신에게 맡겨진 현실을 외면하거나 피하려 하기보다

끌어안고 마음으로 품어 안으면서 자신의 삶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하나도 지고 가기 싫어하는 십자가를

흔히들 사제는 두 개의 십자가를 지고 간다고 말합니다.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들이 입고 있는 제의의 앞과 뒤 혹은,

제의 위에 걸치는 영대의 앞과 뒷면에 각각 십자가가 있습니다.

두 개의 십자가는 바로 자신의 십자가와 자신에게 맡겨진 교우들의 십자가를 의미하죠.


그런데 이 십자가를 자신의 것으로 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모두 등 위에 올려질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모두 무겁게 자신의 등과 어깨를 짓누르는

고통스럽고 무거운 짐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제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십자가(영대)를 앞으로 끌어안고

제대 즉, 하느님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것은 사제들뿐만 아니라 우리 신앙인들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이 모두 남이 주는 것, 남의 짐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멍에는 등에 지고 가야할 남의 멍에가 되어 우리의 삶을 짓누를 것입니다.


자신의 것은 자신이 끌어안고 가야합니다.

그것을 자신이 끌어안지 않고 남의 짐이라고 계속 뒤로 물리면

앞은 가볍지만 뒤는 무거워 우리네 삶을 붙잡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처럼 온유함과 겸손함의 마음으로

삶의 멍에를 남이 주는 것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 받아 안고 가신다면,

우리는 주님처럼 이미 그 짐과 멍에가 가볍고 편한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이미 우리에게 평화와 안식이 무엇인지 알려주시기 때문이죠.


오늘 하루 그렇게 자기 주위에 널린 선물들을 남의 것이 아닌,

하느님이 내게 주신 나의 멍에로, 바로 나를 위한 선물로 끌어안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 당신의 십자가를 가슴에 가만히 안고 당신을 바라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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