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결과 애긍의 주보 성인 루치아 성녀 - 이기양 신부님

2006. 12. 13. 오전 8:49:25

글자

<12월 13일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정결과 애긍의 주보 성인 루치아 성녀


   오늘은 앞을 보지 못하거나, 눈이 아픈 사람들의 수호 성인인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면서 어쩌면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성녀 중의 한 분이 루치아 성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루치아 성녀는 동정 순교자로 자기의 모든 욕망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가장 귀한 생명까지도 하늘 나라를 위해서 봉헌하셨던 분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고, 또 일초라도 목숨을 더 연장하기 위해서 아등바등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욕망을 채우고,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면서 평화와 행복을 누리고 있느냐하면 오히려 더 불안하고 갈증을 느끼며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고 있지요.
   그에 비해서 동정 순교자 루치아는 자기의 모든 욕망과 목숨까지도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죽음 앞에서도 자유를 누렸던 분이십니다. 루치아 성녀를 통해서 우리는 지나치게 욕망을 채우고 또 너무나 육신에만 연연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초대 교회에는 동정 순교자로 꼽히는 분들이 네 분이 있는데 아가다, 아녜스, 체칠리아 그리고 루치아 이 네 성녀가 바로 그분들로, 교회는 이들을 오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루치아’라는 이름은 원래 ‘빛’(lux)에서 나온 것으로 사실 성녀 루치아는 초대 교회 신앙 생활에 있어서 다른 이들에게 대단히 큰 빛이 되신 분입니다. 성녀는 이태리 시실리 섬 시라쿠사에서 출생하여 304년 디오클레시아노 황제 때 순교를 하였습니다. 로마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가 찾아온 것이 313년이므로 박해 말기에 순교를 하신 동정녀이시지요.
   일찍이 홀로 된 어머니 에우티키아는 딸을 위해서 어느 귀족의 아들과의 혼담을 미리 승낙을 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루치아는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서원을 합니다. 모친에게는 이 사정을 알리지 못하고 기도하면서 때를 기다리는데 마침 어머니가 아주 위중한 병에 걸리게 되지요. 병세는 좀처럼 호전되지 않고 계속해서 심해지기만 하였습니다. 루치아는 50년 전에 순교한 아가다 성녀 무덤에서 기도하면 그 병이 치유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기도하였고 불치병은 완전히 치유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루치아는 어머니께 동정으로 살고자 하는 자신의 결심을 밝힙니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어머니도 딸의 간곡한 청과 하느님의 은총을 생각하고 결국 허락을 하게 되지요.
   하느님을 위해서 살기로 결심을 한 루치아는 자신의 혼례를 위해 준비했던 그 모든 재물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나누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것만은 할 수 없다고 반대를 하였습니다. 꼭 하고 싶으면 자기가 죽은 다음에 하라고 말리는 어머니께 루치아는 “선업은 죽어서, 다 쓰고 남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생활에 불편이 있더라도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이며, 공로도 더 크게 된다.”고 설득합니다. 결국 혼인 준비를 위해서 모았던 많은 재물은 전부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한편 루치아가 이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을 알게 된 약혼자 귀족은 몹시 분개해서 그녀가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사실을 재판관에게 밀고하였고 루치아는 304년 곧 바로 체포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자체가 죽음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재판정에 끌려가 배교를 강요당하게 됩니다. 아무리 심한 고문을 가해도 루치아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황제의 뜻을 따르기를 원하듯 나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 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소원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지요. 재판관은 윤락가로 데려가겠다고 위협을 하였지만 루치아는 이에 굴하지 않았고 갑자기 그녀의 몸이 무거워지는 기적이 일어나 소가 끌어도 꼼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더욱 화가 난 지사는 루치아 성녀의 주변에 장작을 쌓고 불을 질러 태워 죽이려고 하였으나 성녀는 그 불 속에서도 당황하거나 타는 기색이 전혀 없어서 실패하였고, 결국 루치아 성녀는 목이 잘리는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루치아 성녀의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의 모든 욕망과 목숨까지도 하느님께 드릴 수 있어야 되겠다는 굳건한 믿음을 첫 번째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채우려고만 급급해 하지요. 그리고 하느님보다는 먼저 나를 생각합니다. 그렇게 끝없는 욕망을 채우려고 함으로써 오히려 심한 갈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지요. 정말 자신이 아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욕망까지도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유로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루치아 성녀가 결혼 비용으로 준비한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듯이 쓰고 남아서가 아니라 지금 나에게도 필요하지만 먼저 하느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루치아 성녀의 결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나한테도 필요한데…”하면서 결국에는 그 많은 것을 그대로 놓고 죽는 경우를 참 많이 보게 됩니다. 욕심 때문이지요.

   오늘 루치아 성녀 축일을 지내면서 돼지와 암소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어느 날 돼지가 암소에게 자기는 왜 이렇게 사람들한테 인기가 없는지 모르겠다고 한탄을 하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너, 소에 대해서는 온순하다, 친절하다고 이야기하지만 나에 대해서는 아주 지저분하다, 못생겼다고 하고 좋지 않게 이야기를 하는데 이유를 알 수가 없구나. 베이컨도 주고 햄도 주고 여러 가지를 줄뿐만 아니라 족발까지 다 내주는데 왜 나는 너만큼 사랑을 받지 못 하는 것일까?”
한참 생각던 암소가 말했습니다.
    “글쎄, 아마 나는 살아있는 동안에도 내 것을 나누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습니다. 죽은 다음에는 남겨주는 것은 자선이 아닙니다. 살아 생전에 나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이웃과 나룰 때 그것이 제대로 된 선행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요. 오늘 루치아 성녀의 축일을 지내면서 나의 욕망과 내가 귀하게 여기는 것을 하느님께 봉헌할 때 더 큰 은총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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