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2주간 화요일 2006.12.12.(이사 40,1-11/ 마태 18,12-14)
우리가 독서를 할 때 중요하거나 자신의 마음에 드는 구절들 밑에는 줄을 긋든지 다른 표시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줄을 그은 부분을 객관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중요하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내가 줄을 그을 때는 대게가 그 구절이 나의 마음을 잘 드러낼 때 입니다. 자신의 마음 상태를 그 글이 잘 표현해주고 있을 때 우리들은 그 구절에 감명을 받기도 하고, 또는 마음에 무엇인가가 뭉클거리며 움직이고 있지만 자신의 재주로는 그것을 무엇이라 표현하지 못할 때 누군가가 그 마음을 표현해주면 “그래 바로 이거야!”하며 감탄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입니다. 제가 대신학생 때이니까, 30년이 더 지났습니다만 방학을 맞아 광주에서 대구로 고속버스를 타고 오는데 라디오에서 문예극장이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시한부 삶을 사는 주인공이 병상에 누워 성경을 펼쳤는데 주인공의 눈에 들어온 구절이 바로 오늘 독서에 나오는 이사야서의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라는 구절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대신학생이고 힘이 펄펄 넘치는 청년이었지만 그 주인공의 입에서 되새김질 되어 나온 이사야서 구절은 저의 마음 깊은 곳에 새겨졌습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흔히들 사제를 향해 “신부님 되길 참 잘 하셨어요. 결혼생활 해봐도 별 것 아니고, 골치 아픈 아이가 있나, 때로는 싸우는 것도 지겨워요.”라고 넋두리 비슷한 것을 해옵니다. 하지만 그 말들을 듣는 신부들 기분은 별로 좋지가 않습니다. 신부가 혼자 자유롭게 살기 위해 신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부로 싸우는 것이 싫고 아이 낳아 기르는 것이 싫어서 신부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부가 되는 것은 인간은 한 포기 풀과 같고 그 영화는 들꽃 같지만, 그래도 주님이 함께 하시니 그 생명이 값지고 소중하다는 것을 신자들에게 열과 성을 다해 깨우쳐주기 위해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영원하십니다. 영원하신 그분이 우리에게 손을 내미시어 우리를 끌어주시니 우린 영원을 향해 걸음마를 오늘도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처럼 그 주님께서 오늘도 잃은 양 한 마리 찾아 우리에게 오십니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화경에서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봅니다. 세속 사람은 세속이라는 눈으로 주님을 보려고 합니다. 주님의 사람은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려 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오늘 독서들을 다시 한 번 묵상합시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 하성호 신부님
2006. 12. 12. 오후 6: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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