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2006.12.13.수
마태오 복음 11장 28-30절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참다운 안식 민경철 신부
놀러 가고 싶은데 주일이라서 못가고, 조금만 달리 해보려고 하면 양심을
자극하지를 않나, 이사만 가면 성당 짓는다고 돈 내라고 하지를 않나,
삶이 잘 안 풀리면 주님께 원망의 마음이 들고… 어떤 이에게는
신앙생활 이전보다 신앙생활 하는 지금이 더욱 큰 무거운 짐이 되고
쓰라린 멍에가 되기도 합니다. 신앙생활 안에서도 편해볼까 하고
꼼수를 부리려고 하기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 법망을 슬그머니 피해 야릇한 기쁨을 누리거나
부당 이익을 챙기려 하듯이 하느님의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가볼까 하고
잔머리 굴리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요? 참으로 최선을 다해 하느님 세계에
살아보지 못해서 주님 나라의 참 기쁨을 모르기 때문에 불평 불만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는지요? 주님 나라의 안식은 편하게 놀고먹는 그런
넉넉한 생활의 평안이 아닙니다. 고되고 지쳐 있지만 주님의 뜻대로 살아내는
이에게 찾아오는 참 자유인의 기쁨과 행복이지요.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제 영혼이 평안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생각나는군요.
믿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다르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해보이지만, 결국에는 그걸 알아버리고야 마는 것.
그것이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별 도리 없이 순순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 오늘의 모욕을 기억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아침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를 다시 만난다 하더라도 결코 서먹하지 않게
시작하는 것은 인간 모두가 어려워하는 삶의 과제일 것이다.
모욕을, 분노를, 공포를 견디는 힘, 그것은 이 모든 현실을 지켜보고 계시는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 때문에만 가능하다.
그러니 인생의 낯선 시간도 우리는 견딜 수 있다.
하느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만 있다면….
김혜윤 | 생활성서사 | <생손앓이>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