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김웅태 신부님

2006. 12. 13. 오전 8:48:33

글자

대림 제 2주 수요일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오늘 복음[마태 11,28-30]에서 예수님은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하신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야훼를 섬긴다는 그들의 율법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무거운 짐이 되었다.  그래서 마태 23, 4절을 보면 : 예수님은 율법학자와 바리세이들에 대하여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주고, 자기들은 손가락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고 책망하신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생활 속에 짐이 되었는가?  이런 이야기가 있다.  '두 딸을 가진 가난한 과부가 조그만 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과부가 밭을 갈기 시작했을 때, 신명 22, 10이 말하기를 "소와 나귀를 한 멍에에 메워 밭을 갈지 말지니라!"라 하였고, 파종을 할려고 하니, 레위 19, 19이 말하기를, "네 밭에 종류가 다른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고 하였고, 추수할 때가 되어 곡식을 거두어 들일려고 하니, 신명 24, 19이 말하기를, "이삭을 밭에 남긴 채로 잊어버리고 왔거든, 그 이삭을 집으로 되돌아 가지 말지니라!"하였고, 또 레위 19,9이 말하기를 "너희는 땅의 수확을 거두어 들일 때, 밭에서 모조리 거두어 들이지 말라!" 하였고, 타작을 하려하니, "처음의 10분의 1을 드리고, 또 다음의 10분의 1을 드리라!"고 했다.  그 과부는 모세의 율법에 순종하여 모든 것을 바쳤다.  그렇게 된 가난한 과부는, 모세의 율법을 따르기 어려워 자기 밭을 팔아서 두 마리 양을 샀다.  그것은 양을 키워 양털로 의복을 장만하고, 새끼를 낳아 이득을 보고자 하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양이 새끼를 낳았을 때, 아아론의 제사법이 요구하기를, "처음 난 것은 나에게 바쳐라!"함으로 그대로 하였다.  털을 깎을 때가 되어 깎으려 하니, 신명 18, 4이 말하기를 "너희 처음에 깎는 털은 나에게 바쳐라!" 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나는 이 모세의 율법과 아아론의 율법 때문에 견디어 낼 수가 없구나!  양을 잡아서 고기나 먹자구나!" 하니까, 신명 18, 3이 말하기를, "나에게 그 앞 넙적다리와 두 볼 위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 과부는, "내가 그 양들을 잡아 먹어도 편안하지 못하니, 고기를 헌물로 바칩니다!"고 했다.  그랬더니 민수 18, 14에 아아론이 말하기를, "그렇게 할 경우에는 그 고기는 전부 내것이로다!"라고 했다.  그렇게 하여 양을 뺏어가고, 우는 과부와 두 딸만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다.  물론, 모세의 율법이나 아아론의 제사법이 당시의 그만한 이유와 의의가 따로 있었던 것이기는 하지만, 평범한 서민들에게는 크나큰 짐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무거운 짐진 자는 다 내게로 오라!"하시며, 하느님을 공경하기에 그토록 짐이 되는 무거운 짐을 사람들에게서 치워 주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무거운 짐이란" 하느님을 섬김에 따르는 구약의 율법이 요구하는, 그 무거운 짐 보다도 우리가 매일 잘못으로 내 자신 안에 지워지는 "죄와 벌의 무거운 짐!"을 진자 모두 다 당신께 오라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그 짐을 예수께서는 가볍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실상 예수께서는 오늘 복음의 말씀뿐 아니라, 우리 모든 이의 죄의 짐을 한 몸에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구원을 마련하신 것이다.

   우리는 오늘 복음의 말씀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내가 예수님을 몰랐다면, "나는 어떠한 죄의 짐에 눌려 허덕이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죄의 짐을 없애 주시는 예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할 것이다. (출처: 가톨릭대학교 강론자료집 / 정리: 김웅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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